여성 배제·특정인 낙점…공공기관 40곳 '채용 비리'
청년실업률이 12.5%(지난 2월 기준)로 사상 최고치로 치솟는 등 청년 구직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도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최종 면접 과정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우선순위자를 탈락시키거나 채용 규정을 변경해 특정인을 합격시킨 공공기관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정부가 정기적으로 공공기관 채용 비리 감사에 나서고 있지만 적폐(積弊)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난 3월까지 부처별로 자체 시행한 공공기관 채용 비리 감사 결과 40곳이 넘는 공공기관이 ‘주의’ 이상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다섯 차례 신입사원을 공개 채용하면서 최종 합격자를 부적절하게 뽑았다. 규정상 이사장은 최종 면접에서 인사위원회 면접 결과 우선순위자를 최종 합격자로 정해야 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고득점자를 탈락시키고 후순위자를 선발한 것이 적발돼 경고 조치를 받았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지난해 상반기 정기 공채에서 예비합격자를 뽑으면서 특정 학교 출신 지원자와 여성 지원자를 배제하는 방법으로 최종 합격자가 될 수 없는 지원자를 선발했다가 적발돼 경고를 받았다.

조성한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낙하산 인사’들이 공공기관장을 맡다 보니 채용 비리가 터져도 소관 부처에서 강하게 징계하지 못해 비리가 반복되고 있다”며 “기본적인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인 뽑기 위해 채용규정 바꾸고…서류 탈락자가 합격하기도

여성 배제·특정인 낙점…공공기관 40곳 '채용 비리'
각 부처의 산하 공공기관 채용비리 감사에서 특정인을 뽑기 위해 채용 규정을 마음대로 바꿔 적발된 기관이 가장 많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지난해 6월 건설기술 분야 전문직 직원을 채용하면서 특정인 맞춤형으로 응시 자격을 변경했다가 걸렸다.

채용 규정상 자격 요건은 ‘박사학위 취득 후 5년 이상, 석사학위 취득 후 13년 이상, 학사학위 취득 후 15년 이상의 연구 또는 실무 경력자’로 돼 있지만 채용 과정에서 ‘석사 이상, 건설산업 분야 경력 20년 이상인 자로 건설산업 혁신, 정부정책 지원 등의 업무에 참여해 연구원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 보유자’라고 한정했다. 서류전형에 홀로 응시한 A씨가 결국 최종 선발됐다.

◆ 특정인 뽑기 위해 응시자격 바꿔

한 국에너지기술평가원은 2013~2014년 전문계약직과 비서직 직원을 채용하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서류전형 합격자 기준을 변경해 애초 서류전형에서 탈락할 지원자를 최종 합격시켰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2013년 분야별 선발 인원을 임의로 조정하는 식으로 합격 자격에 미달한 지원자를 채용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채용 과정에서 고득점자 선발 원칙을 임의로 제외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공식 채용 절차 없이 이전 공채 과정에서 불합격한 지원자를 마음대로 채용했다가 걸렸다.

최 종 면접에서 우선순위자를 이유 없이 탈락시킨 기관들도 적발됐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지난해 직원 채용 때 인사위원회 심사 결과 우선순위자가 있었지만 원장의 최종 면접에서 후순위자를 최종 합격자로 결정했다. 국가핵융합연구소도 인사위원회 의결 없이 임의로 합격 기준을 바꿔 규정상 합격자를 탈락시켰다.

◆ 합격자가 불합격자로 둔갑

채용 과정에서 각종 가산점 누락으로 채용 공정성을 훼손한 기관도 있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14년 공채에서 비수도권 지역인재, 취업보호 대상자, 장애인 등에 해당하는 지원자에게 가점을 주지 않았다. 그 결과 서류 통과가 가능한 17명이 2차 전형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2013년 사무보조인력을 채용하면서 국가유공자 자녀 우대 등 각종 가산점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합격할 지원자를 떨어뜨리고 불합격할 지원자를 최종 합격시켰다.

이 외에 공무원연금공단은 신입직원 채용 공고문에서는 응시 자격 기준에 학력 제한이 없다고 해놓고 실제 서류 심사에는 대학교 성적에 30% 가중치를 둬 사실상 대학졸업자(예정자)만 서류 심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가 인사혁신처에 적발됐다.

진재구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크고 작은 공공기관이 200개가 넘고 채용 시기도 제각각이어서 정부 차원에서 관리와 감독이 쉽지 않다”며 “공공기관 형태별로 전형 기준을 표준화해 채용 비리가 개입할 틈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