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과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갑자기 취소됐다. 12년 만에 열릴 예정이던 양국 정상회담이 불과 몇 분을 남겨두고 취소된 데는 아르헨티나 정부 측의 사정이 있었다.

당초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핵안보정상회의 일정 가운데 ‘시나리오 기반 정책토의’ 순서에서 약 30분간 별도의 시간을 내 마크리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날 정책토의 순서가 당초 예정된 오후 3시45분보다 15분 이상 늦게 시작된 데다 토의가 길어졌다. 결국 민항기를 타고 이번 회의에 참석한 마크리 대통령은 출발 일정을 늦출 수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르헨티나 측에서 마크리 대통령이 오후 5시 귀국하는 민항기편을 타기 위해 늦어도 오후 4시15분에는 회의장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어서 불가피하게 정상회담을 할 수 없게 됐다며 우리 측에 양해를 구했다”고 전했다. 상당한 외교적 결례였지만 사정이 딱해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우리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마크리 대통령이 전용기 대신 민항기를 타고 온 것은 2014년 7월 이후 기술적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진 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등 채권단이 대통령 전용기를 압류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엘리엇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원리금 상환을 압박하기 위해 2012년 아프리카 가나에 정박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군함 3척을 압류한 적이 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이 소식을 듣고 보잉 757 모델 전용기 ‘탱고1’도 압류될 수 있다고 보고 해외 순방시 이용을 자제해왔다. 과거 페루 대통령 전용기가 압류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취임한 마크리 대통령은 최근 엘리엇 등과의 협상을 통해 이달 중순 원리금의 상당 부분을 갚기로 하는 새 채무조정안에 합의했다.

워싱턴=장진모 기자/이상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