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이곳이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대학생들이 장사에 나서는 ‘정릉 개울장’이 겨울 휴식기를 끝내고 올해 처음 열린 날이었기 때문이다. 시장 옆을 흐르는 정릉천변에서 대학생 250개 팀이 좌판을 차려놓고 직접 만든 아기옷과 장신구, 전통 된장, 수제 과자 등을 팔았다. 이날 하루에만 시민 5000여명이 정릉천변에 몰려나와 전통시장 상인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봄부터 가을까지 격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정릉 개울장’은 성북구청과 대학들의 합작품이다. 성북구가 2014년 국민대 서경대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시작해 이날로 12회째 장을 열었다. 한 성북구 시민은 “구청과 대학이 손잡고 청년들의 기를 북돋아주면서 침체된 전통시장도 살렸다”고 말했다.
[구청 리포트] 구청과 대학이 이런 일도? 다양해지는 대학·구청 협력
관악구-서울대 협력 47건 최대

구청과 대학의 협력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구청은 지역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대학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면서 지역 발전에 공헌할 수 있어서다. 관악구는 서울 25개 구청 중 유일하게 ‘대학협력팀’을 운영한다. 서울대와의 47개 협력 사업을 포함해 8개 대학에서 55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연세대·이화여대 등 9개 대학이 몰려 있는 서울 서대문구와 고려대·국민대 등 8개 대학이 밀집한 성북구 역시 대학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정릉 개울장은 구청은 대학생들에게 디자인이나 상품을 평가받을 기회를 제공하고, 대학생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어 서로 윈윈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구청과 대학이 청년 실업 해소에 힘을 모으는 사례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상권 침체로 공실이 많아진 상가를 창업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청년 상인들을 전통시장에 유치하는 협력도 활발하다. 지난달 11일 문을 연 ‘이화 스타트업 52번가’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화여대-서대문구-서울시가 협력해 침체된 이화여대 정문 앞 골목 점포를 창업하려는 청년들에게 1년간 무상 임대한다. 현재 대학생으로 구성된 6개 팀이 직접 제작한 캐릭터상품, 수공예 액세서리, 가방 등을 팔고 있다. 서대문구는 이화여대 디자인, 정보기술(IT), 건축공학 분야 교수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창업 전문교육과 멘토링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눈길 끄는 대학생 재능기부

구청과 대학의 협력으로 참신한 재능기부도 나오고 있다. 서대문구는 이화여대 추계예대 등 4개 대학 예술 전공 학생들과 함께 ‘행복타임머신’ 사업을 지원한다. 미술 영상 디자인 등을 전공한 대학생들이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초상화를 그리거나 일대기 영상 등을 제작한다. 지난해 노인 400명을 대상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올해 대상자가 640명으로 늘어났다.

이정근 서대문구 어르신복지과 과장은 “초상화를 받고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될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린 분도 있다”며 “일회성으로 끝나는 봉사가 아니라 학생들의 재능을 활용해 서로 다른 세대가 교감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관악구는 서울대 사회공헌 동아리 ‘티움’과 손잡고 경영난을 겪고 있는 영세 상인에게 경영컨설팅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이 동아리는 2011년 창설된 이래 5년간 25개 점포에 컨설팅을 했다. 경기침체 직격탄을 맞은 고시촌 점포를 중심으로 점포당 4개월의 시간을 들여 주변 상권 분석, 메뉴 개선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학이 구청에서 직접 강좌를 여는 일도 있다. 주민 대상 강좌의 주제도 인문학(문학·역사·철학)뿐 아니라 동물복지, 생명공학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3시 관악구청에선 서울대 동물병원이 함께하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행복한 삶’ 강좌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박옥자 관악구 교육정책팀장은 “최근 유기견들이 들개가 돼 관악산을 오르는 등산객을 위협해 문제가 됐다”며 “반려동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주민에게 전달해 사람과 동물 모두 행복해지는 관악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관악구청은 지역주민에게 도움을 주는 대학과의 협력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대학의 풍부한 콘텐츠와 젊은 학생들의 열정이 주민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며 “새로운 협력사업을 계속 발굴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황정환/마지혜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