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동북아 정세 가늠자…한미일 공조, 시진핑의 입에 주목

박근혜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미국, 중국, 일본 정상과 연쇄적으로 양자·3자 회담을 하고 북한의 핵포기를 견인해 내기 위한 정상 외교에 나선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발사, 5차 핵실험 시사 등 추가 도발의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이뤄지는 이번 외교전의 핵심 과제는 박 대통령과 한반도 주변국 정상들이 북한·북핵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로 '원 보이스(one voice)'를 내는가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1월6일)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월7일)에 대응한 사상 최강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결의 채택(3월2일)에도 불구, 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계속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로 북한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에 주요국도 상당히 공감하고 있다.

다만, 중국이 평화협정 문제를 거론하는 등 한반도 문제의 지향점을 놓고 나라별로 온도차가 있는데다 남중국해 문제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를 비롯한 현안을 놓고 미중간 대립이 부각될 경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핵으로 뭉친 한미일 정상, 中압박은 얼마나 = 박 대통령의 북핵압박 외교의 메인 이벤트는 한미일 정상회의다.

한미일 3국 정상은 이미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전화 통화를 하고 북핵 문제에 강력히 대응하기로 입장을 모았다.

실제 한미일 3국은 안보리 결의 2270호 채택 및 각국의 독자 제재 과정에서도 긴밀히 협력했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4년 이후 2년 만에 열리는 이번 3국 정상회의와 한미·한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포기를 겨냥한 강력한 대북 제재 및 압박 조치에 대한 정상 차원의 의지를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보리 결의에 반발하는 북한이 김일성 생일(4월15일)이나 7차 당대회(5월7일부터 개최)를 앞두고 추가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미일 3국 정상의 단호한 대응 방침도 천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북 압박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북한이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는 중국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수인 만큼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는 중국에 대한 메시지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중국 역시 적극적으로 대북 제재·압박에 나선 상태지만, 만약 한미일 3국 차원의 대중 압박 강도가 높아질 경우 중국이 불편해할 가능성도 있다.

한미일 정상회의는 3각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에는 북한·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견제 의도도 깔렸다는 게 아시아 지역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의 인식이다.

효과적인 북핵대응을 위해선 한미일 정상회의가 이른바 반중(反中) 포위 전선처럼 보여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는 얽히고설킨 동북아 정세 속에서 박 대통령의 대북압박 외교가 주목을 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시진핑, 평화협정·사드 거론하나 = 한미일 정상회의와 함께 한중 정상회담은 박 대통령의 이번 북핵 외교전의 또 다른 주요 이벤트다.

북한이 추가도발 위협을 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북한의 전통적 우방으로 평가되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과 만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대북 메시지라는 점에서다.

특히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대북 제재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던 중국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전후로 대북 제재·압박 문제에 대한 태도를 바꾼 상태다.

사상 최강인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하는 한편 실질적으로 유엔 제재를 이행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게 정부 내 평가다.

이런 점에서 한중 정상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회담에서 북핵 불용 원칙과 함께 안보리 제재의 충실한 이행 의지를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국은 북핵 불용과 함께 한반도의 정세 안정도 같이 중시하고 있다.

중국의 비핵화와 평화협상 병행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시 주석 역시 평화협정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역시 대북 압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며, 중국의 평화협정 논의 주장이 당장 북한과 대화를 하자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인식이지만, 시 주석이 평화협정 문제를 거론하고 발언 수위까지 높일 경우 박 대통령의 대북 압박 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시 주석은 평화협정 문제를 한중 정상회담 직전에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주장은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 직전에 이뤄진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미국 방문 때부터 본격화됐다.

미국은 우리와 함께 북한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이지만,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논의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등 우리와 미묘한 입장차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평화협정 문제와 함께 사드 문제도 시 주석이 거론할지 관심이다.

'사드 배치시 한중관계 파괴'라는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을 계기로 한중간 외교적 갈등이 불거진 이후 중국은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우리 측에 노골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이 사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경우 북핵 공조 및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아베, 소녀상 문제 건드릴까 = 한일 정상회담은 한미일 정상회의의 사이드 이벤트 형식으로 열리는 성격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북핵 문제 대응을 위한 양국간 협력 강화 방안"(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이 주요 의제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 양국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라는 점에서 여론의 관심은 이 이슈에 쏠려 있다.

현재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재단 설립 등의 절차가 진행 중인 데다 정상간 만남이라는 점에서 군 위안부 문제는 '충실한 합의 이행'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게 대체적 분석이다.

그러나, 보수·우익세력이 지지 기반인 아베 총리가 한일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아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문제까지 거론할 경우 국내 여론을 자극할 수 있다.

이 경우 한일 관계는 물론 북핵 문제 대응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강병철 기자 solec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