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대북 제재 차원에서 국적 구분해 발표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가운데 '조선적(朝鮮籍)' 보유자가 급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 자료가 나왔다.

일본 법무성은 2015년 말 기준으로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숫자를 최근 공표했다.

이에 따르면 조선적은 3만3천939명이고, 한국 국적은 45만7천772명이다.

전년보다 한국 국적자는 1.7% 감소했고 조선적 소지자는 5.1% 줄어든 수치다.

조선적 소지자는 통상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소속으로 활동해온 것을 고려하면 이번 통계는 재일동포 사회에서 총련의 영향력이 확연히 줄어들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재일동포가 한국 국적과 조선적으로 나뉜 배경에는 일본의 차별 정책이 숨어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일본에 남은 동포에 대해서 1947년 일본 국적을 박탈했고, 행정 편의를 위해 식민지 시대 이전의 국호인 '조선'을 따와 '조선적'으로 칭했다.

이후 1950년 일본을 통치하던 연합군사령부가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신청이 있을 경우 국적란의 '조선'을 '한국'으로 변경한다"는 조치를 내렸고, 1965년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많은 재일동포가 대한민국 국적을 얻었다.

나머지는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조선적을 유지한 채 살아왔다.

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이뤄지지 않아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한 재일동포는 거의 없다.

주목할 점은 법무성이 1970년 이후 매년 하나로 묶어 발표하던 재일동포의 국적을 이번에 처음 한국과 조선으로 구분한 것이다.

오공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단장은 24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적을 구분하면 차별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법무성이 반대했지만 자민당이 강력하게 요청해 공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번 발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대북 제재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재일동포 가운데 한국 국적자가 조선적 보유자를 앞지른 것은 1970년부터다.

당시 총련계의 위상 약화를 우려한 북한과 총련의 로비 때문에 일본 정부는 국적을 구분하지 않고 재일동포 숫자를 발표해왔는데, 이번에 그 관행이 깨진 것이다.

오 단장은 그 관행이 깨진 것과 함께 조선적 숫자가 급감하고 있는 것을 두고 이렇게 풀이했다.

"총련계를 후원하고 육성하는 일은 김일성 주석 때부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까지 모든 북한 지도자가 직접 챙겨왔습니다.

그런데도 이번에 조선적 숫자가 공개됐습니다.

북한의 재일동포 육성 사업이 실패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지요.

일본 정부가 소위 '최고 존엄'에 타격을 가한 셈입니다.

"
그는 민단도 총련을 통해 북한 설득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핵실험 강행으로 일본이 대북 제재에 합류하자 일본 우익의 목소리가 높아져 재일동포의 처지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북한은 땅덩어리도 작은데 핵실험을 하면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지요.

결국 북한 자신을 해치는 일입니다.

이런 사실을 들어 총련에 북한을 설득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
조선적은 일본 법률상 무국적으로 분류돼 외국을 드나들 때 한국 정부의 여행증명서나 일본 법무성의 재입국허가서를 여권 대신 발급받아야 하는 등 여러 가지 불편이 따른다.

그러나 남북한이 하나가 된 이후에나 모국 국적을 취득하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여전히 남아 있다.

재외한인학회 회장인 최영호 영산대 교수는 "남북통일을 향한 일념으로 불편을 감수하며 국적 변경을 거부해온 사람도 있다"면서 "이번 발표로 조선적 소지자를 뭉뚱그려 모두 총련계, 혹은 친북 동포로 인식해 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조선적 숫자가 줄어들고 있지만 당장 총련의 해체 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구홍 해외교포문제연구소장은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하거나 차별을 피하려고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편의상 한국 국적을 취득한 총련계 인사도 있으므로 실제로는 7만∼8만 명에 이를 것"이라며 "북한도 총련계 인사의 이탈을 막으려고 지난해 5년 만에 재일조선학교 후원금으로 2억3천800만 엔(약 24억6천만 원)을 지원했다"고 소개했다.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wakar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