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3일 국회에서 대표직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3일 국회에서 대표직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23일 “고민 끝에 이 당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내가 이 상황에서 나의 입장만 고집해 우리 당을 떠난다고 할 것 같으면, 선거가 20여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전개될지 나름대로 책임감도 느끼게 됐다”며 일각의 사퇴설을 거둬들였다.

김 대표와 친노(친노무현) 등 당내 주류 간 일촉즉발의 충돌을 빚었던 내홍은 표면적으론 봉합됐다. 하지만 이번 비례대표 공천 파동이 김 대표와 당내 친노주류 간 총선 뒤 주도권 싸움의 전초전 성격이었던 데다 당 정체성을 둘러싼 상호 간 엄청난 인식 차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김 대표는 이날도 “총선이 끝나고 대선에 임할 때 현재와 같은 일부 세력의 정체성 논쟁을 해결하지 않으면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고 생각한다”고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또 “어떤 형태로든 정체성을 변경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해 갈등을 예고했다.

지난 22일 밤 당 비대위원들은 김 대표의 사퇴를 막기 위해 서울 구기동 자택을 찾아가 설득했다. 비대위가 당 중앙위원회의 반발 후 의결한 ‘김종인 비례대표 14번’ 중재안을 취소하고 김 대표 뜻대로 2번을 배정했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직도 모두 내놨다. 사퇴 배수진을 친 김 대표에게 당 전체가 백기 투항한 셈이다.

김 대표는 비대위원들의 사의 표명과 관련, “내가 어제 그 얘기를 처음 들었는데 생각을 좀 더 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지만 당내에서는 반려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김 대표는 전날 문재인 전 대표의 만류가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별로 영향을 줬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김 대표와 만난 것을 계기로 당 내외 강경파의 비난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당내 온건파 한 의원은 “선거를 앞두고 비례대표 공천문제를 길게 끌고 가면서 김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 자체가 자해 행위라고 판단해 전략적으로 후퇴한 것”이라며 “총선이 끝나면 잠복한 갈등이 표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이번 사태에서 비대위 대표, 비대위원, 중앙위원, 평당원과 지지자들은 각자의 비전과 입장을 견지하며 충돌했고 절충과 타협에 이르렀다”며 “나라건 정당이건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법이고 그래야 한다”고 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