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철갑탄 방탄복 조달 계획 철회…특정업체 방탄복 계약
군 장교들-방산업체 '짬짜미'…퇴직 이후 방산업체 대거 재취업

감사원이 23일 발표한 '전력지원물자 획득비리 기동점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면 방탄복 납품 비리는 방산업체와 군(軍) 장교의 '검은 거래'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군 장교들은 방산업체 청탁을 받고, 이미 성능이 입증된 철갑탄 방탄복 조달 계획을 일거에 '백지화'했다.

방산업체는 그 대가로 군 장교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전역 후에는 재취업을 보장했다.

실제로 철갑탄에 뚫리는 방탄복 3만5천여벌이 이미 일선 부대 또는 해외파병 장병에게 지급돼 피해는 고스란히 군 장병들에게 돌아갔다.

◇비리로 점철된 철갑탄 방탄복 취소 과정 = 철갑탄 방탄복 조달이 철회된 과정을 보면 군과 방산업체의 '유착관계'가 복마전처럼 얽혀 있었다.

국방부는 지난 2007년 12월 북한의 철갑탄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철갑탄 방호용 방탄복 기술을 개발하기로 하고, 첨단나노기술을 이용한 액체방탄복을 개발했다.

철갑탄은 전차, 군함, 콘크리트 벙커를 관통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수 목적의 탄환으로 탄의 끝부분이 특수강철로 제작돼 있다.

그렇지만 육군 소장 출신으로 당시 국방부 1급 공무원으로 일하던 A씨는 2011년 8월 방산업체로부터 청탁을 받고 기존의 철갑탄 방호용 방탄복 조달계획을 철회한 뒤 해당 방산업체가 일반 방탄복을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로비에 대한 대가는 달콤했다.

특히 군 장교들은 물론이고 육군사관학교 연구소까지 방산업체와 '한통속'이 돼 이 업체를 밀어줬다.

A씨는 철갑탄 방탄복 조달계획을 철회한 대가로 부인을 해당 방산업체 계열사에 위장취업을 시킨 뒤 2014년 3월∼11월 3천900여만원을 받았다.

당시 육군 영관급 장교 B씨는 방탄복 성능 기준 등 국방부 내부정보를 업체에 제공한 뒤 5천100만원을 받고, 2012년 6월 퇴직 이후에는 이 업체 이사로 재취업했다.

육군사관학교의 화랑대연구소는 사업자 선정 전에 이 업체에 방탄복 시험 시설과 장비 등을 무단으로 제공하는 특혜를 제공했다.

당시 육군사관학교 교수 C씨는 2009년 8월∼11월 3차례에 걸쳐 탄약 534발을 무단 반출해 해당 업체에 제공했고, 2009년 11월∼12월 다른 업체의 시험결과를 베껴 허위 방탄시험 성적서를 작성하는 등 37건의 성적서를 허위 발급해줬다.

C씨는 대가로 주식을 포함해 1억1천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고, 전역 후에는 해당 업체의 연구소장으로 취업했다.

B씨는 지난 21일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이 업체는 지난 2014년 북한 개인화기에 관통되는 방탄복을 제공해 논란을 불러온 방산 업체와 동일하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방탄 헬멧도 납품비리 = 방탄헬멧 납품 과정도 문제 투성이였다.

당시 방사청 육군 장성 D씨는 신형 방탄헬멧 입찰 과정에서 1순위 업체를 상대로 2순위 업체에 36억원 규모의 납품권을 양보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뒤 전역 후에는 2순위 업체에 재취업해 4개월 동안 4천600여만원을 받았다.

또 다른 방사청 육군 장성 E씨 등 3명은 헬멧 부속품 입찰 과장에서 1순위 업체를 부당 감점해 탈락시킨 뒤 후순위 업체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은 특히 소송에서 1순위 업체를 탈락시킨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는데도 후순위 업체와의 계약을 강행했다.

이밖에 국방기술품질원은 분대용 천막 1천127동에 대한 품질보증업무를 담당하면서 외피 고정끈이 한 겹으로 제작돼 자주 찢어진다는 내용의 불만사항 79건을 접수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항공기 시동장비 불법 수의계약 = 감사원은 이와 별도로 '무기 및 비무기체계 방산비리 기동점검'을 벌여 항공기 시동장비에 대한 납품 과정에서 불법적인 수의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방위사업청은 특정업체의 항공기 시동장비가 환경시험기준에 미달했는데도 '적합'하다는 내용의 허위문서를 작성해 중소기업청에 통보했고, 중소기업청은 이 서류를 근거로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성능인증서를 발급했다.

그 결과 방사청은 지난 2013년 12월 경쟁입찰을 거치지 않고 이 업체와 항공 시동장비 91대를 납품받는 378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방사청은 또 미사일에 안정적으로 전원을 공급하는 전원체계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 특정 업체가 유효기간을 초과한 시험성적서를 제출했는데도 이를 그대로 인정해 2014년 4월 378억여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