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구기동 자택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기자들 사이로 지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구기동 자택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기자들 사이로 지나고 있다.연합뉴스
모욕감·친노 거부감·비대위원 실망감 복합적 작용
문재인 급거상경·비대위원 "송구스럽다"며 대표직 수행 호소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22일 비례대표 공천 문제를 둘러싼 당내 갈등과 관련, 대표직 사퇴 배수진을 친 채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

특히 비대위가 김 대표에게 비례대표 2번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려 하자 김 대표는 비례대표 순번에서 "내 번호는 빼놓으라"며 엄포를 놓는 등 이미 마음이 사퇴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김 대표가 거취까지 고민하게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자신을 비례 2번으로 '셀프 전략공천'한 것을 놓고 '비례 5선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려 한다'는 비아냥까지 나온 것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인격적 모독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대단히 자존심이 상했고 모욕적으로 느꼈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김 대표가 2번에 배정한 것은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을 싫어하는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런데 말도 안되는 비난으로 한 방에 호남표를 날려버렸다.

김 대표가 그것을 너무 슬퍼했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공천을 위한 중앙위 단계의 당 내홍 사태 속에 친노 패권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판단과, 여전히 운동권정당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김 대표 측 인사는 "친노 진영이 김 대표에게 비례 2번을 부여하고 대표 몫 전략공천 4명을 인정할테니 나머지 비례 공천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사람을 심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며 "친노가 자신을 핫바지에다 얼굴마담으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라고 성토했다.

이 관계자는 "당이 좀 안정화되고 공천이 끝나니까 친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며 "운동권 정당으로는 수권정당이 요원해 이를 바꿔보려고 했는데 김 대표가 노욕을 낸다든지, 심통을 부린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측근은 "김 대표는 이런 식이라면 수권정당이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다.

김 대표가 아무리 해도 당이 변하지 않으니 혼자서 당을 끌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전했다.

비대위원들에 대한 실망감도 원인이 됐다고 한다.

비대위가 김 대표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례 순번을 2번에서 14번으로 조정하고 이를 보고도 받기 전에 언론에 노출되는 과정 등에 대해 김 대표가 격노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 측에서는 비대위원들이 김 대표의 생각에 동조하기보다는 당내 여론이나 역학관계에 휩쓸려 오히려 김 대표를 흔드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불만이 강하다.

김 대표도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비대위원들을 향해 "일반 당원들과 달리 판단해줬으면 좋겠다"고 서운함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비대위원들은 "대표를 잘 모시지 못해 송구스럽다.

앞으로 총선 승리를 위해 계속 당을 이끌어달라"고 간곡히 호소했지만 김 대표는 똑부러진 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김 대표는 비례대표 명부 작성권한을 비대위에 일임하면서 "비례 2번에서 내 이름을 빼놓으라"고 엄포를 놓았고, 비대위원들은 "2번을 비워놓을 수 없고 김 대표 이름을 넣겠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가 비례대표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대표직에서 사퇴할 수 있음을 시사하자 비대위원들이 여지를 두지 않겠다고 막아선 것이다.

비대위원들은 이날 밤 김 대표의 자택을 찾아가는 것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전 대표도 김 대표의 사퇴 고민 소식을 듣고 급거 상경해 김 대표의 구기동 자택을 찾아가 대표직을 계속 수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비대위 회의에서 사퇴 여부에 대한 직접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이 상태로 당을 끌고갈 수 있을지 내일까지 좀더 생각해보겠다", "모욕을 참기 어렵지만 신중히 생각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 측에서는 이미 김 대표의 마음이 더민주를 떠났다며 대표직 사퇴를 기정사실화하는 강한 발언들이 계속 나온다.

반면 김 대표가 비례대표 공천 과정의 논란을 털어내고 리더십을 재정립하기 위한 군기잡기 차원에서 벼랑끝 전술을 펼치고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서혜림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