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강력개탄·시정요구"…관계개선 속도에 영향 가능성
관계개선 역주행은 않을 듯…북핵위기, 관계악화 제동역할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간의 첫 정상회담과 12월 28일 양국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계기로 '비정상의 정상화'에 나섰던 한일관계가 18일 독도 영유권 주장 확대와 일본군 위안부 강제성 모호화 등을 골자로 하는 일본 고교 교과서의 검정 통과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우리 정부가 반발하고 국민 여론이 악화화면서 적어도 한일간 일시적 긴장은 불가피해 보인다.

검정 신청을 한 사회과 교과서 35종 가운데 27종이 독도 관련 기술을 했으며, 전반적으로 독도에 대해 "일본 고유의 영토", "한국의 불법점거" 표현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제일학습사의 '지리A'의 경우 기존 "한국과 영유권 문제가 있다"는 표현이 "일본의 영토", "한국이 점거"라는 내용으로 바뀐 것이 대표적이다.

동경서적의 '일본사A'에서는 현행본에서는 독도가 지도에만 표기돼 있으나, 검정 통과본에는 "1905년 시마네현에 편입됐다"고 기술됐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은 교과서 검정 신청이 지난해 4~5월 이뤄짐에 따라 12월 있었던 한일 양국의 합의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교과서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이나 반인도성, 피해자가 겪은 고초 등을 명확히 기술하지 않은 가운데 일부는 강제성과 관련된 표현을 흐렸다.

시미즈(淸水)서원 교재는 기존 '일본군에 연행되어' 표현이 '식민지에서 모집된 여성들'로, 도쿄(東京)서적의 교재는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표현이 '위안부로 전지(戰地)에 보내졌다'로 각각 바뀌는 등 피동형 표현으로 강제연행과 책임성을 흐렸다.

정부는 이날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 등 왜곡된 역사관을 담았다면서 "강력히 개탄하며, 즉각적인 시정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정병원 외교부 동국아국장은 이날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로 스즈키 히데오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번 교과서 검정 문제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길로 접어든 한일관계가 완전히 방향을 바꿔 역주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관계개선의 속도에는 다소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한일관계의 흐름 자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교과서 검정과 독도 문제와 위안부 등 역사 문제는 연례행사처럼 진행돼 온 데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이 왜곡이 확대된 측면은 있지만, 완전히 '근본적 수준'의 새로운 도발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악화한 동북아 안보위기와 한미일 안보협력 등도 한일관계 악화를 막는 일종의 '제동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은 대북 안보리 결의 이행은 물론 독자적인 대북제재에 나서고 있고, 우리 정부로서는 북한의 압박을 위한 일본 측의 협조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일 모두 교과서 검정과 관련한 긴장과 갈등을 급격히 고조시키기보다는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정부가 이날 성명에서 '규탄' 대신 '개탄'이라고 용어를 쓰고, 주한 일본대사가 아닌 총괄공사를 부른 것이 주목된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검정 통과 시에는 당시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이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했었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일본의 독도 야욕과 위안부 합의 여진을 비롯한 각종 역사갈등으로 앞으로도 부침을 계속할 전망이다.

특히 초·중·고 등 일본의 자라나는 세대들이 독도 등과 관련해 왜곡된 내용을 반복적으로 학습함으로써 그 부작용으로 향후 한일간의 역사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한일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의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첫 정상회담을 한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이달 말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핵안보정상회의 계기에 다시 만날지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