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탈당하며 野 재편 승부수 뒀지만 '安의 벽' 넘지 못해
정치인생 최대 위기…소신 명분은 지켰지만 당내 입지는 축소


4선의 국민의당 김한길(서울 광진갑) 의원이 17일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 정치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지난 1월 야권의 '창조적 파괴'를 외치며 더불어민주당을 탈당,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와 함께 두번째 공동창업에 나섰으나 야권연대 문제를 둘러싼 불협화음으로 결국 '백의종군'이라는 외통수로 떠밀리게 된 것이다.

안철수·천정배 '투톱'과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사이가 된 채로다.

당에 머물며 총선에서 후보자들의 요청이 있으면 선거지원을 통해 일정역할을 자임한다는 방침이지만, 당분간은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김 의원의 '중대결단'은 그의 야권 통합·연대 주장이 안 대표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을 때부터 어느정도 예고돼 온 것이다.

그 스스로 최근 "나는 결단을 너무 많이 했다"면서도 "어떤 결과에 대해서든 분명하게 책임지겠다"고 말했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이달 2일 야권통합을 전격 제안했을 당시 김 의원은 천정배 공동대표와 함께 당내 논의를 주도해왔고, 이 과정에서 더민주와 김 의원간에 물밑 통합 협상이 오갔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그러나 국민의당 의총에서 '통합 불가론'이 확정되고 안 대표가 "통합은 당원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라고 평가절하 하면서 김 의원의 입지는 위축됐다.

이 과정에서 김 의원은 지난 11일 상임 공동선대위원장직을 던지며 배수의 진을 쳤다.

하지만 안 대표는 사의를 수용하며 사실상 결별을 공식화했고, 야권연대 카드로 안 대표를 압박하며 자신과 공동전선을 펴온 천 대표가 지난 15일 "수도권 연대가 여의치 않다"며 후퇴, 당무에 복귀하면서 김 의원은 고립무원에 처하게 됐다.

김 의원측의 부인에도 불구, 요며칠간 탈당 내지 불출마설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또한 더민주의 최재성 의원이 "김 의원이 야권분열 구도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불출마를 선언하고 야권통합과 연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등 불출마 압박도 적지 않았다.

김 의원은 천 의원의 '회군' 직후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눈뜬 사람 하나가 모든 진실을 말해준다는 말이 있다.

답답하다"면서 "한달 뒤의 (총선) 결과에 야권의 지도자들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김 의원은 천 의원의 당무복귀 이후 거취에 대해 심각한 장고에 들어갔다고 한다.

실제 김 의원은 불출마 선언 전날인 14일 선거운동을 전면 중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의 불출마는 녹록지 않는 지역구 사정이라는 현실적 이유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혜숙 전 의원이 더민주 후보로 확정,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여야간 일대다자구도로 치러지게 되면서 선거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던 탓이다.

결국 김 의원으로선 "수구보수 세력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주는 일만은 절대 하지 못한다"는 자신의 공언대로 불출마를 통해 최소한의 명분을 찾는 길을 선택한 셈이다.

김 의원의 합류에 대비, 광진갑 공천을 미뤄뒀던 더민주가 지난 14일 공천을 마무리, "이제 김 의원이 탈당해도 지역구를 조정 못한다"고 말하면서 김 의원으로선 오도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됐다.

김 의원은 17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며 2008년 18대 총선 당시에도 불출마를 선언, '야인'으로 돌아갔으나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갑에 출마해 화려하게 재기한 바 있다.

김 의원측은 "현재로선 탈당 가능성은 없다"며 "총선 과정에서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 것이며 대선을 앞두고 있으니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 이후 야권이 또한차례 지형 재편을 겪게 될 경우 김 의원이 다시 한번 야권의 재구성에 일정한 역할론을 자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조성흠 기자 hanks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