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태도보다 유연해진 듯…"5자회담 수용과 의미 달라"
美 "병행논의 가능성 배제 안 해"…정부 "비핵화 최우선"


중국이 8일 북핵 해법을 위해 북한을 뺀 3자, 4자, 5자 접촉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갖고 있다"고 밝혀 발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제기해온 5자회담과의 접목 가능성 때문이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기간인 이날 베이징(北京) 미디어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문제를 대화 테이블로 복귀시키는 데 도움만 된다면 우리는 각국이 제기한 3자, 4자, 나아가 5자 접촉까지를 포함해 모든 것에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측이 공개적으로 3자, 4자, 5자 접촉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외교안보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5자회담을 제기했을 때도 중국 측은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하며 사실상 거부입장을 밝혔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왕 부장의 언급은 기존보다 유연해진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측의 5자 접촉 언급을 바로 5자회담에 대한 지지 또는 수용으로 연결짓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정부의 한 당국자는 "중국 측의 '개방적'이라는 말은 우리 말로 '열려 있다'는 의미이지만, 이는 지지한다 또는 수용한다는 의미와는 다른 것"이라면서 "중국 측이 과거보다는 다소 유연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5자회담을 받아들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한반도 문제를 대화 테이블로 복귀시키는 데 도움만 된다면…"이라는 왕 부장의 언급은 일종의 전제조건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중국 측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 국면에서 주장해온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추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5자회담 가능성을 흘리면서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논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여론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측의 움직임은 최근 미국 측의 반응과 맞물려 더욱 주시를 받고 있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현지시간으로 3일 "존 케리 국무장관이 지난달 25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회담시 언급한 대로 우리는 병행(비핵화·평화협정) 논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커비 대변인은 "비핵화가 어떤 형태의 논의에도 포함돼야 한다는 우리의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기존에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비핵화 진전' 입장에서 다소 유연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대북제재에만 올인하는 사이 미중이 일정 시점 이후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논의를 매개로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이 경우 우리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듯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현 단계에서 전례 없이 강력한 안보리 결의와 독자적 제재의 충실한 이행에 집중해야 한다는데 (한미) 양국은 인식을 같이하고 있고, 북한과의 향후 어떤 대화에서도 비핵화가 최우선이라는 일관된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면서 '비핵화 최우선'을 거듭 강조했다.

조 대변인은 "미국 측도 이런 입장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혔으며, 이런 원칙은 오늘 외교부 당국자와 주한 미국 대사관 측과의 접촉에서도 확인됐다"면서 이례적으로 외교적 접촉 사실까지 공개했다.

이날 접촉은 외교부 고위 당국자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간 전화통화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이와 별도로 이날 오후 주한 미국대사관의 공식 입장 자료를 내놓고 "한반도 비핵화는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최우선 순위에 있으며, 이것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북핵 논의를 둘러싼 논의 구도가 미묘하게 변화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 한미 모두 공식적으로는 적극 진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측 신임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홍균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현지시각으로 11일 미국 측 수석대표인 성 김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회동하기로 한 것도 대북 제재 이행은 물론, 제재국면 이후 북핵 해법과 관련해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