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대서 비판자제' 한일 위안부합의 의식한 듯
소극태도 지적…윤병세 "전시여성 성폭력 차원서 접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 연설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윤 장관은 이날 북한에 대해서는 "인권의 사각지대"라면서 "국제사회가 이제 행동을 취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간 최종 합의 이후 첫 국제 인권 무대에서의 연설이라는 점에서 이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윤 장관의 발언 수위는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3천600자 가까운 연설문 어디에도 위안부라는 단어는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를 우회적으로라도 기술하는 그 어떤 내용도 담지 않았다.

굳이 찾는다면 "(우리 정부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 분쟁하 성폭력 방지 구상의 주도국가로서 우리는 양자, 지역적 그리고 글로벌 차원에서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런 비극이 미래에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에 계속해서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정도다.

하지만 이 정도의 언급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유추 또는 해석하기에는 메시지가 불분명하고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한일간 위안부 문제 최종 합의에 따라 이날 연설에서 윤 장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발언 수위가 급격히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은 지배적이었다.

한일 양국은 위안부 합의를 통해 합의의 성실한 이행을 전제로 한일 양국이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 비판을 자제하기로 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자체를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보다는 윤 장관이 최소한 국제사회에 한일간 합의 내용을 설명하며 일본 측의 성실한 이행을 강조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았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한일 양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에서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상호 비난·비판을 하지 않기로 한 것과 관련, "합의의 성실한 이행을 전제로 정부 차원에서 국한해 이뤄진 약속"이라면서 "정부는 전시 성폭력 등 보편적 가치로서 여성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논의에는 앞으로도 계속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따라서 한일간 합의 이후 첫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 자체를 거론하지 않은 것은 너무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일간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특히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 등의 표현을 두고 '굴욕적 협상'이라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는 가운데 이날 윤 장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침묵으로 위안부 합의 논란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장관은 2년 전인 2014년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정부의 퇴행적 행보에 대해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다시 한 번 짓밟는 것으로서, 역사적 진실을 외면한 반인도적, 반인륜적 처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었다.

윤 장관은 현지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연설에서 핵심은 북한 인권문제였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연설 무대가 유엔이라는 점을 고려해 양자적 측면보다 전시 여성 성폭력이라는 다자구도적 차원에서 접근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