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합의로 일사천리로 내달리던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초강력 대북(對北) 제재 결의안 채택 작업이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갖고 있는 러시아가 지난 26일 “제재안 검토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합의를 보류한 것이다. UN 안팎에서는 결의안 채택이 다음달로 넘어가거나 제재안 자체가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복병 만난 UN 대북 제재안] '속전속결' 대북 제재안 일단 스톱…러시아 "검토할 시간 달라"
◆안보리, 러시아 빼고 모두 동의

정부는 안보리가 지난 25일 초안을 받은 이사국의 동의를 얻어 이르면 27일 오후 ‘블루 텍스트(blue text)’로 불리는 최종 결의안을 확정해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이 이날 부처 간 협의 등을 이유로 “결의안 검토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제동을 걸었다.

오준 UN 주재 한국대표부 대사는 26일 “40일 이상 걸려 만든 결의안에 대해 하루이틀 안에 검토를 끝내기는 어려우므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러시아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결의안 채택 시점은 일러야 29일(한국시간 3월1일)이 될 것으로 보이며, 러시아의 검토 작업이 늦어지면 그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지 50일을 넘긴 상황인 만큼 초안 마련 후 이틀 만에 속전속결로 제재안을 채택하려던 한·미·일의 시도는 불발로 끝나게 됐다.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러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14개국은 초안을 최종 결의안으로 채택하는 데 동의한 상태다. 요시카와 모토히데 UN 주재 일본 대사는 교도통신에 “안보리 이사국 가운데 한 나라를 제외하곤 27일 결의안 채택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를 ‘문제의 국가’로 표현한 뒤 “내용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검토할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고 요청해왔다”고 전했다.

◆러, 의도적 시간 끌기 목적은

UN 외교가에서는 러시아의 시간 끌기에 대해 제재안 검토는 표면적 이유일 뿐 다른 전략적 포석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은 미·중 양국이 주도해왔고 러시아를 포함, 나머지 이사국들은 이를 추인했다는 점이 근거다.

일차적인 분석은 한반도 문제를 미·중이 주도하는 데 소외감을 느낀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딴죽을 걸며 외교적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러시아도 미국과 경쟁하는 강대국”이라며 “미·중이 합의했다고 호락호락 받아주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부에서는 북한과 인적·물적 교역을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가 전례없는 강력한 결의안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힌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의 모든 화물 검색, 항공유 수출 금지, 광물 거래 차단 등 제재안 중 일부가 양국 간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27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대북 제재가 민간 경제 분야에서 이뤄지는 북한과 외국 파트너들 간의 합법적 관계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결의안 채택이 늦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내용 자체가 희석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UN의 한 외교소식통은 그러나 “러시아도 강력한 대북 제재가 필요하다는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내주 초반에는 안보리 이사국의 만장일치로 채택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UN본부=이심기/워싱턴=박수진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