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대란 가능성 우려…대전·충남·세종 예산 편성도 영향

김병우 충북교육감이 보육대란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자 누리과정에 대한 소신을 접었다.

새누리당이 주도하는 충북도의회가 지난해 연말 임의 편성한 6개월치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411억9천만원)을 집행하기로 한 것이다.

김 교육감은 도의회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강제 편성하자 "의회가 예산을 임의 편성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며 재의를 요구하고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김 교육감의 강경 입장에 따라 도교육청은 임의 편성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도에 전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1·2월분 어린이집 보육비는 카드사가, 운영비는 충북도가 대납했다.

누리과정 문제에 관해 강경 일변도였던 그의 갑작스러운 '변심'을 의외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많다.

예산이 불법적으로 편성됐으니 재고해 달라고 요구한 상황에서 그 예산을 쓰겠다고 선언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강제 편성된 예산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됐다.

물론 김 교육감이 어린이집 누리과정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발을 뺀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정부 사업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를 비판하는 글도 숱하게 올렸다.

전국 상당수 교육감과의 결의에 따라 청와대 앞 1인 시위에도 나선다.

그러던 그가 임의 편성 예산을 집행하기로 한 것은 보육대란 임박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김 교육감은 지난 23∼24일 열린 '충북교육정책 청문관 워크숍'과 '누리과정 해법 찾기 교육가족 타운미팅' 결과를 토대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 행사에서는 어린이집 보육료는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했다.

그러나 정부를 향해 투쟁하더라도 교육감이 보육대란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호소'도 많았다.

김 교육감은 누리과정 갈등의 최대 피해자는 학부모와 아이들이라는 대목에서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받을 고통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으니 우선 위기부터 극복하자는 것이 김 교육감 뜻"이라며 "어린이집 누리과정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충북도, 충북도의회도 중앙정부를 향해 한목소리를 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집행하지 않으면 다음 달부터 보육대란이 벌어지는 마당에 이 사업의 책임 소재만 따지고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는 '현실론'에 김 교육감이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김 교육감은 또 전국 교육감들이 재정난 등을 이유로 진보와 보수를 떠나 어린이집 누리과정 사업은 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같은 목소리를 내지만 '각론'에서는 조금씩 다른 입장을 취한 것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웃 지자체인 대전시, 충남도, 세종시만 해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하거나 일부 편성했다.

김 교육감은 나머지 6개월분은 오는 4월 제1회 추경에서 편성하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도교육청은 다만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으로 내려준 목적예비비 55억원은 추경에 반영하기로 했다.

김 교육감의 임의 편성 예산 집행 결정으로 충북의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보육대란 문턱에서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반년치만 해결된 것이어서 보육대란의 불씨는 아직도 남아 있다.

(청주연합뉴스) 박재천 기자 jc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