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미, 10시간 18분으로 국내 최장 발언기록 경신
"선거운동은 어쩌나"…현역의원 본회의장 발 묶여 '발동동'
정의장 등 의장단 3교대로 시간표 짜서 의장석 사회

국회선진화법(현행 국회법) 도입 후 첫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이틀째 진행 중인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각종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이날 오전 필리버스터 국내 최장 기록을 경신했고, 은 의원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운동화 차림'으로 발언대에 올라 무제한 토론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4·13 총선이 50일도 채 남지 않아 국회의원들의 '마음'이 온통 지역구로 향한 가운데 필리버스터라는 돌발 변수 때문에 '발'은 정작 본회의장에 묶여 속앓이를 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殷, 떨리는 음성과 눈물로 '10시간18분간' 마침표 = 이날 새벽 2시 30분께 운동화를 신고 발언대에 올랐던 은수미 의원이 발언대를 내려온 시각은 낮 12시 48분. 10시간 18분이 흐른 뒤였다.

은 의원은 더민주 김광진 의원과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에 이어 세 번째로 본회의 단상에 오른 무제한 토론자였다.

국회 밖이 깜깜할 때부터 아침 해가 밝아 중천으로 넘어올 때까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테러방지법의 부당함을 피력했던 은 의원도 발언 10시간이 넘어가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막판 15분가량은 목소리가 잠겨 발언을 이어가기 위해 목을 가다듬는 경우가 잦아졌고, 컵에 물을 따르기 위해 물병을 들어 올린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도 포착됐다.

또 테러방지법의 인권 침해 가능성을 설명하는 도중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밥 이상의 것을 배려해야 하는 게 사람이다, 그래서 헌법이 있다"라고 발언을 이어가다 눈물을 삼키며 말을 잠시 멈추기도 했다.

은 의원은 발언 도중 화장실로 가는 일이 없도록 전날 물도 마시지 않은 채 금식으로 필리버스터를 준비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본회의장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소속 동료 의원들의 격려도 이어졌다.

은 의원의 발언시간이 6시간을 넘어선 이날 오전 8시 30분께 의장석에 있던 같은 당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은수미 의원, 6시간이 넘었는데 괜찮아요?"라며 컨디션을 살폈고, 동료 의원들은 "파이팅"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또 은 의원이 발언을 마치고 체력이 떨어진 탓에 쩔뚝이며 단상에서 내려오자 소속 의원들이 기립해 은 의원을 포옹했으며, 의장석에 있던 정의화 국회의장도 일어나 "부축을 좀…"이라며 상태를 살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은수미, 눈물로 마친 10시간 18분의 필리버스터. 감동!!"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현재 은 의원 다음 주자로 박원석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고 있다.

박 의원 역시 장시간 토론에 대비해 '간첩의 탄생' '조작된 공포' 등 총 5권의 책을 들고 운동화를 신은 채 단상에 올라, 이날 오후 12시 49분부터 무제한 토론을 진행 중이다.

박 의원 다음으로는 더민주 유승희·최민희, 정의당 김제남, 더민주 김경협· 강기정, 정의당 서기호, 더민주 김용익·김현 의원 등의 순으로 무제한 토론자가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구 어쩌나' 의원들 속앓이…與 "선거운동에 이용" 지적도 = 새누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일종의 '선거운동'이라고 규정하며 날카롭게 긁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원내대표단-정보위원회 연석회의에서 "더민주는 민생보다는 선거, 국민보다는 선거, 국가보다는 선거, 오로지 선거만 앞세우는 필리버스터를 통해 선거운동을 하는 기막힌 상황"이라 지적했다.

이어 "필리버스터를 종료하지 않으면 임시국회 종료일인 3월 11일까지 갈 수밖에 없고, 그럼 선거구 획정 시기를 놓쳐 20대 총선 연기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라며 "더민주는 이제 결자해지 해야 한다"고 필리버스터 중단을 촉구했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자꾸 광우병 (사태) 때가 생각난다"면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날 것처럼 선전선동하는 모습이 보여 씁쓸하다"라고 말했다.

또 "책임감 없는 좌파 교수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테러방지법이 없어도 테러 막을 수 있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를 계속 듣고 있으니까 답답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물밑에선 의원들이 총선을 49일 앞둔 시점에서 국회에 발이 묶여 초초해 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필리버스터 돌입을 결정한 더민주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에게 "본회의장 자리를 지켜 토론하는 의원님께 힘을 실어달라"며 시간대별 조 편성 안내문자를 소속 의원들에게 발송한 상태다.

새누리당도 지난밤 원내부대표단을 중심으로 본회의장 대기조를 꾸렸고, 소속 의원들에게 갑작스럽게 표결에 들어갈 상황에 대비해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2시간 안에 본회의장에 올 수 있도록 대기하라'는 지침도 하달했다.

이에 일부 여당 의원들은 의원회관에 머물며 지역구에 있는 보좌진에게 전화로 선거운동을 지시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도 포착됐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건 야당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더민주의 경우 이날부터 '공천배제 20% 컷오프' 대상자들에게 개별통보가 갈 것이라고 알려진 상황인 가운데,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도 삼삼오오 모여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보였다.

한편, 정의화 의장과 정갑윤·이석현 부의장도 이날 3교대 시간표를 짜서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본회의장의 의장석을 돌아가며 지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이신영 서혜림 기자 ykb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