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하위 20% 하루 늦춰 내일 통보…"전화벨만 울려도 가슴 철렁"
긴박한 국회 상황에도 '마음은 콩밭'…미확인 살생부까지 나돌아
공관위 룰수정에 불만 증폭…추가탈당·국민의당 이탈 경고음도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23일 물갈이 공포감에 휩싸였다.

공천관리위원회가 당초 이날로 예정됐던 현역의원 평가 하위 20% 컷오프 결과 통보를 24일로 하루 연기하고, 이어서 3선 이상 중진 50%, 초재선 30%를 대상으로 정밀심사를 통해 공천 원천배제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대대적인 물갈이 공천 의지를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당장은 정치생명줄을 쥔 공관위 위력에 눌려 숨죽이고 있지만 향후 당내 극심한 반발로 이어지고 탈당해서 국민의당으로 합류하는 등 이탈할 경우 야권의 지형이 다시 한 번 출렁거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단 겉으로는 복지부동이다.

수도권 한 3선 의원은 "전화 벨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거린다"고 말했고, 또다른 중진 의원은 "지금 불만이 팽배해 있지만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공교롭게 이날 여야 간 선거구 획정기준 합의, 테러방지법의 국회의장 직권상정 등 국회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지만 의원들은 온통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듯 동요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의원들간에는 "탈락 통보 전화가 오면 어떡하나"라는 말들이 수시로 오갔고, 서로 통보를 받았느냐며 질문을 주고 받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보좌진들도 정보를 주고받으면 살 떨리는 하루를 보냈다.

의원총회 도중 상당수 의원이 자리를 비우자 한 당직자는 "정신이 당사에 가 있는데 의총이 눈에 들어오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극도로 경직된 탓에 한 의원이 침을 맞으러 갔다는 소문도 돌았다.

탈락자 명단 통보가 24일로 하루 늦춰졌다는 사실이 오후 늦게 알려지자 의원들은 허탈한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더민주 의원들은 오후 테러방지법 처리 저지를 위해 대거 본회의장에 입장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에 들어갔지만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당내에서는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이름이 명시된 정체불명의 컷오프 리스트까지 나돌아 공포감을 한층 높였다.

이런 가운데 공천관리위원회는 온종일 회의를 열고 20% 컷오프 명단 확인과 통보 절차 등을 논의하며 부산한 하루를 보냈다.

홍창선 공관위원장은 오후 회의 때 "탈락자에게 격식과 예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결국 서면과 유선을 통해 컷오프 사실을 알리고 서면 문건에도 '탈락' 대신 '면접 참여' 여부를 표시하기로 했다.

오후 4시 현역 평가를 담당한 조은 평가위원장은 당사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긴장된 표정으로 홍 위원장과 함께 '살생부' 확인에 들어갔다.

실무자들은 명단 확인에 필요한 준비를 끝낸 뒤 오후 5시께 사무실을 나왔고, 홍 위원장과 조 위원장 단둘만 남아 평가 하위 20% 명단을 확인했다.

의원들은 겉으로 숨죽이고 있지만 속으로는 김종인 대표 체제의 공관위 활동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매우 높다는 후문이다.

공관위가 문재인 전 대표 시절에 비해 현역의원 교체폭을 키우는 쪽으로 공천룰을 수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론이 많다는 것.
한 3선 의원은 "전임 대표 시절에 진통을 겪으면서 어렵게 합의한 것을 공관위가 뒤바꾼 것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관위가 본선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현역의원 잘라내기 이벤트에만 집착해선 안된다는 비판론도 나온다.

명분없는 잘라내기가 이뤄지면 결국 무소속 출마나 국민의당 이탈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수도권 한 재선의원은 "18대 총선 공천 때도 박재승 공심위원장이 조그마한 전과가 있다고 현역을 다 잘라내 '공천특검'이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정작 성적표가 엉망이지 않았냐"고 우려했다.

중진을 겨냥한 정밀심사에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크지만 그동안 중진이 자기 희생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한 데 대한 자업자득이라는 시각이 있다.

잇단 탈당사태 등 당이 어려운 시기에 중재에 나섰지만 결국 분당을 막지 못한 채 일관성없는 잔꾀만 썼다는 비판론이 결국 제 발등을 찍는 격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김동현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