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텃밭에서 고군분투하는 유명 정치인들 "민심 따를 뿐"

4·13 총선을 50여일 앞두고 험지(險地)에서 출사표를 던진 여야 유명 정치인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여당 후보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등 야당 지지세가 강한 호남에서, 야당 후보는 새누리당 텃밭인 영남에서 출마하는 만큼 다른 후보들과는 차별화된 선거전략을 구사하며 '이변'을 꿈꾸고 있다.

험지에서 새로운 '신화창조'를 시도중인 후보는 새누리당 이정현(전남 순천·곡성) 의원, 더불어민주당(더민주) 김부겸(대구 수성갑) 전 의원, 새누리당 정운천(전주 완산을)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더민주 김영춘(부산진갑)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서둘러 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이른 아침부터 선거구 고샅고샅을 누비며 표밭을 다진다.

◇ 선거운동 무기는 근면·성실·진정성

17일 새벽 4시 30분 전남 순천시 팔마체육관 인근 가스충전소.

해가 뜨려면 아직 3시간이나 남았지만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택시기사들과 대화하느라 여념이 없다.

여론에 민감한 택시기사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귀기울이는 이 의원 모습에 택시기사들도 지역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하며 분투를 당부한다.

이어 인근 교회에서 새벽기도에 참석한 뒤 목욕탕에서 몸을 씻으면서도 주민들과 얘기를 이어간다.

수행원도 없이 홀로 근처 식당에서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는 자전거를 타고 신도심인 금당지구에서 골목골목을 누비며 출근길에 나서는 주민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오전 10시께 순천시 아랫장에 들러서는 상인들 손을 일일이 잡으며 "이정현이에요.

잘 할게요"라며 친근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 공약을 펼치겠다', '○○ 정책을 도입,운영하겠다'고 홍보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을 묵묵히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이 의원은 이처럼 매일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지역구 곳곳을 누비며 오후 10시까지 하루 17∼18개 읍·면·동에서 주민과 만난다.

그는 야당 예비후보가 많은 이곳에서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등 네거티브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공약을 실천하겠다며 지지를 당부한다.

◇ 소속 정당 표시 없는 '평상복' 차림…있는 듯 없는 듯 얼굴 알리기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수성갑)에서는 더불어민주당(더민주) 김부겸 후보가 19대 총선, 대구시장 선거에 이은 '삼 세판'에 나섰다.

김 후보는 매일 오전 5시 40분께 집을 나서 가까운 공원과 뒷산을 찾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화랑공원, 범어동 뒷산 등에서 이른 아침부터 운동하는 주민들을 만나는 게 첫 일과다.

가끔 구민운동장이나 어린이회관 앞에서 단체 산행을 떠나는 주민들을 만나고 주민노래교실이나 경로당 앞에서도 어르신들과 편하게 얘기를 나눈다.

김 후보는 어느 곳에서건 어깨띠를 두르거나 소속 정당 점퍼를 입지 않은 '평상복' 차림이다.

최근에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범어네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삼가고 있다.

여당 텃밭인데다 최근 야당 분열로 소속 정당의 인기가 낮은 상황에서 정당 보다는 인물로 승부를 보려는 원모심려는 곳곳에서 엿볼수 있다.

그 흔한 명함도 잘 건네지 않는다.

수행원 한 사람만 대동해 다니며 '있는 듯 없는 듯' 얼굴을 알리고 있다.

아직 선거일이 50여일이나 남았는데 불필요하게 과열 분위기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치에 실망한 다수 유권자의 정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더구나 '야당의 무덤'이란 대구에서 사실상 혈혈단신으로 싸우는 김 후보로서는 매사가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김 후보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하는 유권자들이 많아진 것 같아 힘을 얻는다.

김 후보 캠프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이웃 주민과 격의 없이 소통하면서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레이스를 펼치겠다는 자세로 선거운동을 한다"고 전했다.

◇ 지역 떠나지 않고 꾸준히 민심에 호소…주민 반응 변화

전주 완산갑에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출마하는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도 고군분투 중이다.

그는 2010년 전북도지사 선거와 2012년 총선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각각 18%, 35.8%를 득표하는 등 전북에서 지역장벽을 뛰어 넘으려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정 전 장관은 요즘 '민생 119 투어'란 이름으로 지역구 곳곳을 찾아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파트 입주민과 우체국 자원봉사자, 환경미화원 등 각계각층 주민을 만나 평소 듣기 어려웠던 고충을 듣고 민심을 다독인다.

지난 10일 황산방 산행에서 만난 등산객들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주에 안착해 금융산업도시로 발전하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는 "(여당인) 새누리당 차원에서 전주 이전에 차질이 없도록 힘을 쏟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야당 텃밭에서 집권여당의 장관을 지낸 경험과 이미지를 부각시켜 지역 민원 해결을 위한 적임자라는 점을 홍보해 민심을 파고들려는 전략으로 분석되는 대목이다.

지역 민심이 처음부터 정 전 장관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지난 19대 총선 선거유세 때만 해도 "새누리당 명함은 받지 않겠다"며 손사래를 치던 주민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역을 떠나지 않고 꾸준히 민심에 호소에 온 결과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민심이 상당히 온화해졌음을 느끼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이번 총선에는 기필코 지역구 민심에 '합격'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 시민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 해결 방안 제시

부산 진구갑에 출마하는 더민주 김영춘 전 의원은 'BMW'(마을버스·모터바이크·도보) 선거운동을 펼치며 표밭을 다진다.

매일 같이 이른 아침부터 마을버스 정류장이나 버스 안에서 주민과 격의 없이 얘기를 나눈다.

지역구 지형상 언덕이 많아 49cc 낡은 스쿠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에 하루 3만보를 걸으며 주민 3천명을 만나고 300명과 명함·전화번호를 교환하는 '333 캠페인'도 펼친다.

낙후된 원도심 재개발, 견제와 균형의 정치를 설파하고 다니면서 처음엔 그에게 냉담했던 유권자들도 점점 귀를 기울이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시민이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겠다며 지지를 호소하는 그의 진심을 주민들이 조금씩 알아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지역 50대 유권자 A씨는 "원래 새누리당 지지자인데 매사에 열성적인 김영춘에게 마음이 간다"며 "매번 특정 정당만 당선되니까 주인 대접을 못 받는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또 "부산을 바꾸는 큰 일꾼으로 키워달라"는 '일꾼론'과 "도로 싹쓸이냐? 야당의 견제의석 확보냐"는 '견제론'의 양 날개 전략을 구사하며 고향민심에 다가가고 있다.

김 전 의원은 "내가 정치적인 유불리를 따졌으면 부산에 왔겠느냐"며 "당 지지도 차이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하게 시민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면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재선 박창수 임채두 김용민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