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주'들, 당국 묵인하에 사금융·운수업·인력시장 진출
북한대학원대 양문수 교수 논문…"北 시장촉진 유지 가능성"


북한에서 장마당 등으로 시장화와 사유화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세차업과 예식장 사업 등 새로운 업종이 성업중이며, 부동산 시장도 활기를 띤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일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리뷰(2016년 1월호)'에 게재한 '2015년 시장화 동향과 전망'이란 논문을 통해 "시장화는 북중무역과 함께 북한경제를 끌고 가는 2대 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양 교수는 장마당 증가에 따른 시장화의 진전으로 새로운 소비재와 서비스 시장이 등장, 확대되고 있다며 구체적인 예로 세차업과 전용 예식장 등을 들었다.

논문에 따르면 북한에 승용차와 버스, 화물차 등이 늘면서 평양과 원산, 개성 고속도로와 평양-신의주 국도변을 따라 주유소들이 줄줄이 생겨나고 세차업이 새로운 유망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차업의 경우 외화벌이 회사가 외국제 설비를 갖춘 기계 세차장을, 일반 돈주들이 손 세차장을 각각 운영하면서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새롭게 등장한 전용 예식장에서는 결혼식뿐 아니라 회갑잔치와 돌잔치를 할 수 있고, 직장과 단체를 대상으로 한 뷔페식 식당까지 겸하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의 경우 한 구역(우리의 구(區)에 해당)에 보통 3∼4개의 전용 예식장이 있다고 양 교수는 전했다.

이와 별도로 만성적인 전력난과 땔감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태양 열판(태양 전지판)과 '천마' 상표의 액화석유가스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지난해 심각한 가뭄으로 평양 시내 수돗물 공급이 수개월 동안 중단됐을 때에는 인근 강물을 퍼 판매하는 '물장수'도 등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북한 시장에서 가장 활기를 띠는 분야 중 하나는 부동산 시장이라고 양 교수는 설명했다.

북한 주택은 국가 소유로 거래가 불법이지만, 집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입사허가증(집에서 거주할 수 있는 허가증)을 주고받음으로써 암암리에 주택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주자 명의가 바뀐 새 입사 허가증은 두 사람 사이에 거래를 중개하는 주택 거간꾼(데꼬사장)이 보안서와 도시경영사업소 간부들에게 뇌물을 주고 받아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입사허가증은 소유가 아닌 거주 개념으로, 우리가 주택을 거래할 때 교환하는 등기 권리증과 같은 공공 증명서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돈 많은 사람들과 북한 거주 화교들은 타인의 '거주 명의'를 빌려 집을 여러 채 보유하고 있으며, 이런 불법적인 다주택 보유 현상은 신의주와 남포, 함흥 등 북한의 주요 도시에서 성행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 돈주들은 사유화가 확대되면서 사금융은 물론이고 10∼30인승의 '벌이버스'로 불리는 시내버스와 택시 등 운수업과 광산업, 부자들에게 '머슴'을 알선해 주는 인력시장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이런 생산수단의 개인 소유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국가 기관 또는 국영 기업의 산하 편입이라는 편법을 통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대신에 북한 당국은 이들에게 조세·준조세를 부과해 합법성을 부여하면서 부족한 재정을 메우고 있다.

논문은 "북한 당국이 당분간 시장화에 대한 현재의 활용·촉진 정책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북한이 종전에 시장을 없애느냐, 아니면 살리느냐가 최대 고민이었다면 이제는 시장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아가 시장을 적극 활용하면서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대해 고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영만 기자 ym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