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밥값' 못하는 지방의회
“한 개 구의회의 한 해 예산이 평균 50억원입니다. 구의회가 과연 이 정도 예산만큼의 일을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지난해 말 예산안 의결을 앞두고 기자와 만난 한 구청 고위 관계자는 한숨을 쉬며 이같이 말했다.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자마자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반갑지 않은 소식이 잇따랐다. 경기도의회와 서울 양천구의회가 새 회계연도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해 사상 초유의 준(準)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준예산은 새 회계연도가 시작될 때까지 지방의회에서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아 해당 지자체장이 전년도 예산에 준해 경비를 집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도의회의 준예산 사태는 만 3~5세 유치원·어린이집 무상교육 정책인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빚어졌다. 도의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하자 이에 반대하는 새누리당이 의장석 점거로 맞섰다. 결국 몸싸움 끝에 파행으로 치달았다. 양천구의회는 구 집행부가 편성한 동 청사와 복지관 건립 예산을 놓고 여야가 끝까지 대립했다. 양천구의회 의원은 18명으로, 더민주와 새누리당이 각각 9명이다.

정부와 지방교육청의 갈등을 빌미로 만 3~5세 아동을 위한 예산을 일방적으로 삭감한 더민주의 행태는 비난받을 만하다. 양천구 집행부가 법적 필수 절차인 구유재산 관리계획을 누락했다는 구의회 새누리당 의원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준예산 집행 사태까지 초래하면서 대다수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별개 문제다. 준예산 사태가 계속되면 노령층 난방비 지원, 무료급식, 장애인 일자리 사업 등의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 신규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서울의 구청 기준으로 지방의회는 연평균 50억원의 예산을 쓴다. 필수 복지비 등을 제외한 서울 구청의 한 해 가용예산이 100억원 미만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럼에도 지역 주민들을 대변해야 할 지방의원들이 국회의원들의 ‘행동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기초의회 무용론’과 ‘폐지론’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