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대 老정객부터 40대 차세대 정치인까지 정파초월해 한자리
'YS 키즈들'이 키워낸 '3세대 키즈들'까지 모여 고인 회고
'40대 기수론'부터 총선 '물갈이론'까지 화제도 시공 초월

현대 정치사의 '거산(巨山)'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지난 60년 굴곡 많은 정치판을 수놓았던 주요 장면의 주인공들이 쉼 없이 등장했다.

마치 러닝타임 60년짜리 대작 영화의 출연진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대 인사를 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국가장 첫날인 22일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과거 보필했던 측근부터 파트너, 정적(政敵)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세대와 정파를 가리지 않고 등장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슬퍼하고 영면을 기원했다.

'상도동계'란 별칭이 유명한 민주계 인사들부터, 숙명의 경쟁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인사들까지 앞다퉈 달려왔다.

김 전 대통령이 평생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옛 공화당계와 민정계 인사들도 이따금 눈에 띄었다.

시대별로는 김 전 대통령처럼 한국전쟁 종전과 함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노정객들부터 이제 중진이 된 이른바 'YS 키드'들이 한 데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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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였던 94세의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와 김수한(88) 전 국회의장, 박관용(78) 전 국회의장 등은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평생을 민주화 투쟁에 몸바친 투사들이었다.

최측근이었던 최형우(81) 전 내무부 장관은 몸이 불편한데도 한 달음에 달려와 오열했다.

핵심 멤버였던 김덕룡(74) 전 의원과 새누리당 서청원(72) 최고위원도 자리를 지켰다.

14대와 15대 총선 때 김 전 대통령이 직접 발탁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이인제 의원, 이재오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이들은 이미 한 시대를 풍미한 거물급 정치인들이다.

이날 조문객 가운데 과거 상도동계·민주계 인사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여권 내부에서 분화하고 현 야권으로도 이동해 재회한 대목은 정치의 무상함을 일깨웠다.

김 전 대통령과 민주계는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맞붙었을 때 이 전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홍사덕 등 일부 상도동계 인사는 박 대통령의 캠프에 합류했다.

상도동계 마지막 세대인 정병국 의원과 상도동계는 아니지만, 여권 내부에서 민주계를 정신적 뿌리로 여기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젊은 초선 의원들도 모습을 보였다.

젊은 초선 의원들은 'YS 키즈'인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키워낸 대를 이은 '3세대 키즈들'이었다.

한국 정치사의 인맥 흐름이 한 세대를 건너 YS 빈소에서 이어지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청준의 소설 '축제'에서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해후한 친지들이 고인을 회상하며 앙금을 풀었듯 김 전 대통령의 빈소도 화해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야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문희상 유인태 전병헌 의원, 김부겸 전 의원 등이 조문 왔고, 정대철, 한화갑, 정동영 전 의원도 직접 빈소를 다녀갔다.

여권의 다른 한 축인 '공화·민정계' 출신으로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 박희태 전 국회의장 등이 고인을 애도했다.

이날 빈소에 모인 노·장·청의 정치인들은 세대와 정파를 가리지 않고 김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중심으로 정겹게 과거를 회고했다.

주로 노정객들이 과거 무용담을 털어놓았고, 후배들은 이를 경청했다.

과거 김 전 대통령이 40대 야당 대표였을 때 야심 차게 제기했던 '40대 기수론' 얘기부터 현안인 내년 총선에서의 '물갈이' 문제까지 과거와 현재의 정치 화제가 뒤섞여 공존했다.

평생 새벽 5시 기상해 조깅을 하고, 군사정권의 물리적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던 김 전 대통령의 여러가지 일화는 밤새 빈소를 달궜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