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달라졌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주민 여론을 의식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주민들에게 주요 현안을 직접 설명하도록 하고 민심을 우려해 사과하는 모습까지 연출하고 있다.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25일 오후 전 주민이 시청하는 조선중앙TV에 직접 출연, 새벽에 타결된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 경위와 결과를 설명했다.

북한이 남북한 회담 합의문을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 등 매체를 통해 발표하는 건 통상적인 일이지만, 수석대표가 직접 TV에 출연해 설명한 적은 전례가 없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이례적 브리핑은 남북간 군사적 긴장 격화로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가 열리고 전방지역에 '준전시상태'까지 선포됐던 긴박한 상황이 풀리게 된 과정을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인 셈이다.

김정은 체제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주민 여론을 의식한 조치와 맥을 같이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브리핑에서 지뢰도발을 의식한 발언을 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북한은 그동안 이번 긴장 격화의 책임이 남측의 있지도 않은 '북한 지뢰도발' 주장에서 비롯됐다며 지뢰도발을 남측의 '자작극', '모략극'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공동 보도문에서 이 사안에 대해 비록 모호하지만 '유감 표명'을 담은 것은 주민들이 갸웃거릴 수 있는 대목이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남북한 합의를 의식한 듯 '지뢰'라는 용어를 쓰지 않은 채 "근거없는 사건을 만들어가지고"라는 말로 남측의 모략극이라는 기존 주장에 변함없음을 주민들에게 주입시켰다.

물론 북한은 그동안에도 비공개적인 내부 강연 등을 통해 현안에 대한 지도부의 정책과 활동을 정당화했지만 '진실'을 강조하는 공개적인 브리핑과는 성격이 다르다.

주민 여론을 의식한 지도부의 행보는 작년 5월 평양 도심인 평천구역의 고층 아파트 붕괴사고 대응에서도 엿보인다.

평양 도심의 고층 아파트가 붕괴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하자 조선중앙통신 등 매체들은 "주민들이 쓰고 살게 될 살림집 시공을 되는 대로 하고 그에 대한 감독 통제를 바로 하지 않은 일꾼들의 무책임한 처사로 인명피해가 났다"고 전격 공개했다.

그런가 하면 이 아파트 시공사 소속 책임자인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이 지역 주민들 앞에서 머리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전격 공개했다.

최 부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장에서 소장(별 하나)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또 앞서 김정은 후계체제 시절인 2010년 2월에도 북한은 2009년 12월 전격 실시한 화폐개혁으로 경제난이 가중되고 민심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당시 김영일 내각 총리가 주민 달래기에 나섰다.

김영일 총리는 평양시내 인민반장 수천명을 모아놓고 화폐개혁과 시장폐쇄 조치의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해 사과하며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이런 모습은 화폐개혁의 장본인 박남기 노동당 비서를 처형한 것보다 더 드문 일이었다.

후계자로 만들어지는 정치적 과정을 거의 생략한 채 갑작스레 출범한 김정은 정권이 바닥 민심을 중시하면서 민심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chs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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