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접촉이 25일 극적으로 타결되기까지 최대 쟁점은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건과 20일 서부전선 포격 도발에 대한 북한 측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었다. 당초 북한은 이번 도발을 놓고 우리 측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측 대표단은 무박 4일간의 마라톤 협상에서 도발에 대한 사과 없이는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 북측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압박해 유감 표명을 이끌어냈다. 북한은 과거 일부 도발에 대해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은 일체의 사과나 유감 표명 없이 책임을 회피했다.
[남북협상 극적 타결] 천안함·금강산 피격 때도 꿈쩍않던 북한, 박 대통령 '원칙 대응'에 결국 사과
북한은 1954년부터 2012년까지 침투 도발 1959건, 국지 도발 994건 등 2953차례 도발을 일으켰다. 연평균 50건씩 도발한 것이다.

이 중 북한이 정식으로 사과한 것은 1968년 1월 발생한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 사건(1·21사태)이 유일하다. 당시 무장공비 30여명이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서울에 침입, 경찰과 교전을 벌이다 대부분 사살됐다.

이 사건에 대해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은 1972년 5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방북했을 때 “그것은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었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후 4년이나 지난 뒤늦은 사과였다. 또 “우리 내부에서 생긴 좌익맹동분자들이 한 짓이지 결코 내 의사나 당의 의사가 아니었다”며 직접적인 책임을 회피했다.

유감 표명은 세 차례 있었다. 1976년 8월 일어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대해 당시 군사정전위원회 북측 수석대표는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내는 구두 메시지 형식으로 유감을 나타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이었다.

1996년 9월 동해안 잠수함 침투 사건 때도 유감 표명이 있었다. 북측은 같은해 12월 조선중앙통신과 평양방송을 통해 “막심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남조선 강릉 해상에서의 잠수함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당시 북측은 “그런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으나 이후로도 북한의 도발은 계속됐다. 2002년 6월 제2차 연평해전에 대해서는 같은해 7월 김영성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이 정세현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전화 통지문을 통해 “서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 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북한은 대부분의 도발에 대해서는 유감 표명조차 없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발뺌하거나 우리 측에 책임을 돌렸다. 북한은 2010년 3월 천안함이 폭침됐을 때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같은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후에는 우리 군의 선제공격에 대응 사격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우리 측에 떠넘겼다. 금강산 관광객 고 박왕자 씨가 북한군에 피격당하는 사건(2008년 7월)이 일어났을 때도 북한은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