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협상무기'된 대북방송

"김정은이 거짓말로 …" 방송에 북한 체제 존립 위기감
'저비용 고효율 전력' 입증…향후 협상서도 지렛대로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긴장완화 방안에 합의함에 따라 우리 군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25일 낮 12시부터 중단했다. 군은 북한군의 목함지뢰 도발 응징 차원에서 지난 10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11년 만에 시작했다. 연합뉴스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긴장완화 방안에 합의함에 따라 우리 군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25일 낮 12시부터 중단했다. 군은 북한군의 목함지뢰 도발 응징 차원에서 지난 10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11년 만에 시작했다. 연합뉴스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군사적 긴장 해소방안이 타결되면서 우리 정부의 주요 협상카드로 활용됐던 대북 확성기 방송이 주목받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대북 응징 수단이 고작 확성기 방송이냐’며 비판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번 남북 협상을 통해 대북 확성기 방송의 위력이 증명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5일 고위급 접촉 결과를 발표하면서 “북한이 요구한 것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이었다”며 “우리는 어떤 조건에서 확성기 방송을 중단할 것인지 고민했고,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을 붙여 (도발 재발방지라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이날 “북한의 양보는 대북 확성기가 북한 정권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한국 측 군사분계선 쪽에 설치된 48개 확성기 중 하나는 ‘김정은의 무능한 정권이 변변치 않은 거짓말로 세계를 속이려 하고 있다’고 방송했다”고 전했다.

무박 4일에 걸친 마라톤 협상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은 핵심 의제가 됐다.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합의 도출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우리 측의 확성기 방송이 그만큼 북한 정권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는 게 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15일에 불과한 짧은 기간에 가동됐지만 ‘대북 심리전 수단’으로서 위력적인 효과를 보였다”며 “우리 정부와 미국을 상대로 대표적 ‘비대칭 전력’인 핵과 미사일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했던 북한의 상습적인 협상 전략도 확성기 앞에서 힘을 잃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과거 협상력을 키울 필요가 있을 때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카드를 활용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핵과 미사일 언급을 자제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 지뢰도발 이후 지난 10일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2004년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키로 합의한 뒤 11년 만이었다. 하루 8시간가량 이어진 방송에는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 대한민국 발전상, 민족 동질성 회복, 북한사회 실상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중국만 세 번 방문했지만 김정은은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외국 방문을 못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국제사회에서 갖는 실제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아이유의 ‘마음’,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빅뱅의 ‘뱅뱅뱅’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K-팝 히트곡들도 확성기를 통해 울렸다.

군 관계자는 “최전방 부대에 입대한 북한 군인들의 사상을 크게 동요시킬 수 있는 확성기 방송이 결국에는 체제 위협 수단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도 우리 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응해 대남 확성기를 동원, ‘맞불 방송’을 했지만 대남 방송용 스피커의 출력이 약하고 노후화돼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민족끼리’ 등 인터넷 매체를 동원해 “남한군 사병들이 병영을 탈주하고, 예비군 훈련 동원자의 절반 이상이 훈련장을 이탈했다”고 한 거짓 선전전략도 해외 언론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대북 확성기가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효과적인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군 관계자는 “이번 남북 대치 국면에서 확성기 방송이 최전방 부대에 입대한 북한 군인들을 동요시키고 북한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의 비대칭 전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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