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해저드에 빠진 한국] 출장은 'I·V·N·W'…길 위의 공무원들
지난 5월의 어느 월요일, 정부세종청사 A부처 김모 국장의 하루는 이랬다. 가족이 있는 서울 자택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세종청사로 출근해 주간회의를 마치고 점심 약속시간에 맞춰 서울로 올라왔다. 식사 뒤 밀린 결재와 보고를 받아야 했기에 다시 오송(세종청사에서 가장 가까운 역)행 KTX에 몸을 실었다. 저녁 일정은 서울이다. 이날 하루에만 KTX를 네 번 탔다. 이른바 ‘W의 날’이었다.

정부세종청사 공무원 사이에는 출장 동선을 빗댄 ‘I·V·N·W’라는 영문 알파벳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I형’은 서울에서 세종 또는 세종에서 서울로 가는 경우다.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건 ‘V형’(서울-세종-서울)이라고 부른다. 때에 따라서는 ‘N형’(세종-서울-세종-서울), 아주 드물게는 김 국장처럼 하루에 KTX를 네 번이나 타야 하는 ‘W형’도 있다.

출장 횟수가 직급이 높을수록 많은 탓에 이런 우스갯소리도 생겨났다. 1주일 중 세종시에서 머무는 날이 하루면 1급 공무원, 이틀이면 2급, 사흘이면 3급이라는 것이다. 장관은 ‘장기출장 관리’로 통한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서울까지 KTX를 이용해 출장을 가는 공무원은 한 달에 5000여명. 하루 평균 230명 수준이다. 이들이 지난해 사용한 출장비만 약 150억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장비 지급에 문제가 생기는 곳도 있다. 공무원들은 여비 지급 규정에 따라 국내 출장 땐 운임(실비) 외에 일비·식비(각 2만원) 4만원을 받게 돼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대변인실은 예산이 부족해 서울 출장을 한 번 갈 때마다 지급하는 돈이 운임을 포함해 4만원이 전부다. KTX 왕복운임(3만7000원)에 세종청사와 오송역을 오가는 BRT 요금(왕복 3200원)을 합한 교통비도 안되는 수준이다.

길 위의 공무원이 많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행정 낭비라는 지적이 일자 영상회의실도 마련하고, 지난해 국토교통부에서는 ‘길 위의 과장(課長)을 없애겠다’는 선언까지 했지만 그 숫자는 줄지 않고 있다. 공무원은 오늘도 길 위에 있다.

세종=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