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무례…안으로는 공포정치, 밖으로는 위기조성
유엔 안보리 비난하며 "함부로 도전하지 마라" 위협

북한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개성공단 방문을 하루 앞둔 20일 방북허가를 돌연 철회하면서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당초 개성공단 방문이 이뤄지면 반 총장이 한반도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남북관계 개선의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특히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은 22년만, 개성공단 방문은 사상 처음이었던 만큼 반 총장의 행보에 무게가 더 실렸다.

국제사회의 관심도 오는 21일로 예정됐던 반 총장의 발걸음에 집중된 터였다.

그러나 반 총장의 방북은 발표 하루 만에 무산되면서 기대도 일단 물거품이 됐다.

반 총장은 전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당일 오전 북측으로부터 방북 허가를 최종 통보받았다고 밝혔지만, 하루만인 이날 새벽 허가 철회 통보를 받은 것이다.

우선 반 총장에 대한 북측의 방북 허가 철회는 한반도 정세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가장 대표적인 국제기구 수장에게 방북허가 철회 배경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외교적 무례'를 범했다.

그안 수시로 돌출행동을 벌였던 북한이지만 국제기구의 수장에 대한 이런 무례한 행각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북측이 최근 보인 도발적 행태와 긴장 모드를 계속하겠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북측은 당장 이날 오후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긴장 수위를 높였다.

최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비판에 강하게 반발하며 "우리의 핵타격 수단은 본격적인 소형화, 다종화 단계에 들어선지 오래"라면서 "함부로 도전하지 마라"고 위협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거론하며 "유엔 안보리가 세계평화와 안전 보장 사명, 헌장에 명기된 임무를 망각하고 미국의 독단·전횡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 공정성과 형평성을 줴버리고(내팽개치고) 주권존중의 원칙,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스스로 포기한 기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반 총장에 대한 방북 허가를 철회한 직후 안보리에 대한 비난이 눈에 띈다.

북측은 최근 SLBM을 시험발사한 것은 물론, 서해상 남측 함정에 대한 조준타격 위협에 이어 실제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포사격 훈련까지 실시하며 긴장 수위를 높여왔다.

또 군부 서열 2인자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숙청함으로써 북측 내부의 불안정성과 유동성도 한층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해 노동당 창건 70주년(10월10일)에 맞춰 장거리 미사일 실험으로 의심되는 '인공위성' 발사 준비를 지시했다는 최근 언론 보도도 향후 북한의 행보와 관련해 주목된다.

내부적으로는 '공포 통치'를 계속하면서 외부를 향해서는 '위기 조성'에 나서는 모습이다.

정부가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최근 대북지원이나 북측과의 접촉 등에서 다소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이 혹시라도 위협을 넘어 실제 도발에 나서면 최근 방한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경고한 것처럼 대북 추가 제재가 이어지면서 상황은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북측의 돌연 철회 배경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한편, 향후 남북관계 등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북측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북한이 고립의 길로 나아가지 말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내민 대화와 협력의 손을 잡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길에 나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측이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라면서 "국제적인 고립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북측이 남측 및 국제사회와 관계개선을 기초로 성과를 내겠다는 발상보다는 오는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까지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