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책 없는’ 합의 > 새누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왼쪽부터)와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가 지난 2일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및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양당 대표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책 없는’ 합의 > 새누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왼쪽부터)와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가 지난 2일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 및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양당 대표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가 최종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두고 새누리당 책임론이 제기된다. 향후 30년간 손질할 필요없는 개혁안을 만들겠다던 새누리당의 개혁 의지는 야당과 공무원단체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뒷걸음질 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논리 때문에 당초 개혁의 목표로 삼았던 재정절감 효과도 상당 부분 축소됐다는 지적이다.

◆야당·공무원단체에 밀려

정부와 새누리당이 올해 초 제시한 협상 초안은 ‘신·구 공무원의 연금체계를 분리’하는 구조개혁 내용을 담고 있다. 장기적인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신규 재직자와 기존 공무원을 분리해 새로 임용되는 공무원의 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에 맞추는 방식이다. 하지만 야당과 공무원단체가 협상 과정에서 이 개혁안에 반발하면서 신·구 공무원 분리 방안은 논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

이후 공무원연금개혁 실무기구의 협상 방향은 야당과 공무원단체의 기존 주장대로 공무원연금의 기여율(매달 받는 급여에서 기여금으로 내는 비율)과 지급률(재직연수 1년을 채울 때마다 현 소득 대비 은퇴 후 받는 연금액을 계산한 비율)을 단순 조정하는 수준의 모수(母數)개혁에 맞춰졌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단체는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 강화라는 전제 조건을 내세웠다. 정치권 안팎에선 공무원단체가 공적 연금 강화를 협상 지렛대로 삼아 시간끌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새누리당이 구조개혁 방침을 접고 모수개혁으로 협상 방향을 재설정한 것 자체가 예견된 실패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모수개혁이 미완의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미 2000년, 2009년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입증됐다”며 “앞으로 30년은커녕 10년도 안돼 공무원연금을 다시 손봐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정치 이해득실에 휘둘린 개혁안

지난 1일 기여율과 지급률 수준을 두고 최종 이견 조율에 나섰던 실무기구는 야당과 공무원단체가 협상 타결 조건으로 내세운 공적 연금 강화(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에 제동이 걸렸다.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는 “공무원연금과 공적 연금 연계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고, 여야는 협상 타결을 눈앞에 두고 막판 신경전을 벌이며 대치했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기류가 변한 건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의 활동 시한 마지막 날인 2일 새벽이었다. 새누리당은 태도를 바꿔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발생하는 재정절감분을 국민연금 등에 투입하자는 야당의 제안을 수용했다. 공무원연금 이슈가 마무리되지 않고 정치 이슈로 이어진다면 내년 4월 총선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여당 지도부의 고민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의 사전 교감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연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문형표 장관은 지난 2일 양당 지도부가 개혁안 합의문을 발표하기 직전 국회를 찾아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 국민연금 문제를 끌어들인 것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선진화법에 또 잡힌 새누리

공무원연금 개혁은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야가 처리 시한(2일)에 쫓긴 채 국가 재정절감이라는 당초 개혁 취지보다는 서로의 이해득실만 챙기는 선에서 주고받기식 합의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지난 2일 개혁안 합의 직후 “다소 미약하지만 구조개혁이 일부 반영됐고, 무엇보다 국민 대합의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또 한 번 자신들이 만든 국회선진화법에 발목이 잡히게 됐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야당이 반대하면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공무원연금 개혁법안은 통과시킬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와 새누리당이 의도했던 완전한 개혁보다 차선의 대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