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일본 바로 보기] 아베 총리의 '제2 메이지유신'…강한 일본의 부활
아베 총리의 ‘제2 메이지유신’
지정학으로 보는 미일정상 회담


2015년 일본 출판가에선 ‘지정학’ 서적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단행본은 물론 지정학 특집을 다룬 언론사의 기획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4월 초 일본 방문 당시 서점가에는 관련 책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경제 주간지 다이야몬드(4월11일자)는 커버 스토리에서 ‘지정학으로 풀어보는 패권쟁탈의 충격’을 다뤘다. 중국의 세력 급팽창에 맞서 일본이 지정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책은 지정학의 학문적 정의와 관련, “지리적인 위치 관계가 국가의 정치 및 경제, 군사 등에 미치는 영향을 다면적으로 분석, 연구하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지정학이 새삼 주목받는 것은 이유가 있다. 집권 3년차를 맞은 아베 총리는 ‘강한 일본의 부활’을 내걸고 경제성장과 군사대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세 개의 화살로 비유되는 ‘아베노믹스’는 올들어 경기 회복이 가시화하면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아베 총리는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 미국과 일본의 동맹 강화를 최우선 대외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4월27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에서 새 미·일 방위협력 지침(일명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한반도 주변은 물론 전 세계를 상대로 일본 자위대가 전쟁 행위나 평화 유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도 양국 동맹의 성격과 역할이 질적으로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양국은 공동성명 발표문에 70년 전의 '적대적 관계'에서 '부동의 동맹'(unshakeable alliance)으로 변모했다고 명기했다. 앞으로 안보 측면에선 자위대의 지리적 역할 철폐와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 경제적으론 거대 경제권인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구축이 질서재편의 양대 축이 될 전망이다.

미일 동맹 강화는 중국 주도로 출범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일본이 참여하지 않은 것에도 확인된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G7(서방선진7개국) 소속 국가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AIIB 창립 멤버로 이름을 올렸으나 일본은 미국과 함께 끝까지 ‘반 중국 진영’을 고수했다. 일본은 중국, 한국과 연대하는 아시아 대륙 국가들과의 동맹 대신 미국 주도의 해상 세력과의 동맹을 선택했다. 1990년 대 이후 중국의 경제, 군사 대국화를 지켜본 일본은 아시아권으로 갈지, 미국권으로 갈지 고민을 해왔다.

향후 일본은 미국 주도의 서방 세력과 더욱 친밀한 대외 정책을 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와 미주 대륙의 관문에 위치한 일본의 지정학적인 국가 이익을 고려한 전략일 것이다. 강한 일본의 부활을 노리는 아베 총리는 국가 이익을 위해 ‘제2의 메이지유신’을 꿈꾸는 듯하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친서방으로 전략을 바꿔 열강의 반열에 오른 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 등 서방국들과 전쟁까지 벌였다.

공교롭게도 아베 총리는 메이지유신의 출발지인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일본 주요 4개 섬 중 가장 큰 본섬인 혼슈(本州) 남서부에 있는 현이다.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야마구치에서 후학들을 양성했다. 그는 생가 인근에 학습시설(塾)을 열어 쿠사카 겐즈이, 이토 히로부미, 요시다 토시마로 등을 키웠다. 이들은 뒷날 메이지혁명의 주역이 되고 메이지정부의 중심 인물로 부국강병을 내세우고 현대 일본을 만든다. 아베 총리는 고향 출신의 선조들이 간 길을 따라 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미국과 일본의 신 밀월 관계는 동북아의 세력 균형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올 것으로 전망된다. 대륙과 해양 세력의 중간에 위치한 반도국가 대한민국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