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예산 소요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입법 관행이 사라진다. 19일 개정된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모든 법안은 국회 예산정책처가 작성하는 비용추계서를 첨부해야 한다. 이날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은 예산이 필요한 법안의 경우 국회 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 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한 게 핵심이다. 개별 의원들이 비용추계의 회피 수단으로 삼는 ‘미첨부 사유서’ 남발을 막기 위해서다.
'소요 예산' 빠진 의원입법, 이젠 못한다
지금까지 미첨부 사유서로 대체할 수 있는 규정을 악용해 비용추계를 생략한 의원입법이 적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이 의원입법을 전수 조사한 결과 2014년 4분기 비용추계서를 내야 하는 257개 법안 중 77.45%인 213개, 올해 1월1일부터 3월4일까지 101개 중 87.12%인 88개 법안의 비용추계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검토도 없이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각 상임위원회에서 비슷한 법들이 ‘패키지’로 묶여 무더기로 통과하는 경우에도 국회예산처의 비용추계를 거치도록 의무화했다.

윤용중 국회 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심의관은 “공신력 있는 기관의 비용추계로 법안의 신뢰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수정안이나 대안과 같이 (상임위 논의 이후) 최종안들도 재정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지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개정 법안을 발의한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19대 국회 접수 의원 발의 법안이 1만4365건에 달한다”며 “의원들이 법안 발의 실적에만 매달려 최소한의 예산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발의부터 하는 관행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단 하루 만에 법안을 만들어 발의하는 ‘인스턴트’식 입법 관행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예산정책처가 비용추계를 할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하고 그 과정에서 관련 부처와 협의할 기회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실 보좌관은 “급할 때는 비용추계 미첨부 사유서만 써내고 법안을 발의한 게 사실”이라며 “이제 (국회 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 기간까지 포함해 법안 발의에 들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과잉 입법으로 법에서 정하는 대로 매년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의무지출’은 계속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129조5000억원으로 전체 예산 대비 44.2% 수준이던 의무지출은 지난해 167조원으로 46.9%까지 증가했다.

미국은 의무지출을 막기 위해 세입이 늘거나 줄어드는 법안을 발의할 때 재원조달 방안을 동시에 입법화하는 ‘페이고 원칙’을 도입했다. 의회가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대통령은 그만큼 세출을 줄일 수 있다. 윤 심의관은 “이번 개정안 시행으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페이고 원칙’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회 관계자는 “지난해 법안 심사 때 제외됐던 재원 확보 방안까지 시행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진명구 기자 pmg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