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잡힌 크라우드 펀딩法] 野 "금융사 지배구조법과 함께 처리하자"
정부가 처음으로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건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5월이었다. 하지만 탄력을 받은 건 이듬해 ‘창조경제’를 앞세운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였다.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법을 시행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담긴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금융위원회 및 중소기업청과의 협의를 거쳐 신동우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6월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그해 말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처음 상정됐다. 별다른 쟁점은 없었다. 하지만 신용카드 정보유출 사태와 세월호 참사가 이어지면서 뒷전으로 밀렸다.

분위기가 바뀐 건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크라우드 펀딩법 통과를 요구하면서부터다. 금융위와 새누리당은 법 통과를 위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압박했지만, 야당은 투자자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후 수차례 열린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를 통해 투자자 보호 문제는 보완됐다. 여야 이견도 좁혀졌다.

야당 일부 의원이 ‘바터(물물교환)’를 요구한 건 이때부터였다. 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은행뿐 아니라 보험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금융회사 지배구조법(김기식 의원 대표 발의)과 ‘남양유업 방지법’으로 불리는 대리점 공정화법(이종걸·이상직 의원 등 대표 발의) 등 야당이 발의한 법안 처리를 크라우드 펀딩법 통과 조건으로 내건 것이다. 금융위와 여당이 크라우드 펀딩법 통과에 온 힘을 쏟는 점을 노려 대가를 요구했다는 지적이다.

2012년 5월 발효된 국회선진화법도 이들 야당 의원에 힘을 실어줬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이견이 있는 쟁점 법안을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해 본회의에서 바로 처리하기 위해선 통상적인 의결 정족수(재적의원 과반 출석+출석의원 과반 찬성)보다 훨씬 까다로운 ‘재적의원의 60% 이상 찬성’을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 전략을 끊기 위해서도 재적의원의 60%가 넘는 찬성표를 확보해야 한다. 야당이 마음먹고 반대하면 법 통과가 쉽지 않은 만큼 상임위 단계에서부터 최대한 합의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여당 측 설명이다.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장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야당은 처음에는 크라우드 펀딩법에 투자자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는 논리로 반대하더니 문제가 해결되자 아무런 상관없는 법을 내밀며 바터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기식 새정치연합 의원실 관계자는 “바터를 공식 제안한 적은 없다”며 “새누리당이 공정거래법을 우선 심사하자고 요구한 여파로 지난 2일 법안심사소위가 파행하면서 크라우드 펀딩법 처리가 지연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