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기도회…"봉건적인 사고방식"

지난 5일 흉기 피습으로 입원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10일 퇴원하기까지 그의 쾌유를 바라는 시민들의 성원이 잇따랐다.

주한 외교관에게 끔찍한 공격을 자행한 김기종(55)씨에 대한 비판 및 엄정한 처벌을 촉구하고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은 차이가 없었지만 일부 단체의 지나친 쾌유 기원 행사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주말인 지난 7일 서울 도심에서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한성총회 소속 신도들이 "리퍼트 대사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기도회와 발레, 부채춤, 난타 공연을 열었다.

엄마부대, 자유청년연합, 구국채널 등 보수단체는 사건 당일부터 리퍼트 대사가 입원한 신촌세브란스병원, 광화문 등 도심에서 연일 같은 주제의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었다.

현장에는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We Love Mark' 등 구호가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8일 오후부터 병원 앞에서 자리를 잡고 '석고대죄 단식'을 벌였다.

그는 "김기종씨에게 테러를 당한 리퍼트 대사와 그 가족,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입원 다음날인 지난 6일 오전 6시 40분께에는 한 70대 남성이 리퍼트 대사에게 개고기와 미역을 전해달라며 병원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이 남성은 고종황제의 마지막 딸 이문용(1900∼1987) 여사의 양아들인 권송성(75) 국보디자인 회장으로 알려졌다.

경호원의 제지로 발길을 돌린 권씨는 미 대사관 측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미국 정부나 미국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전보를 보냈고, 병원을 다시 찾아 리퍼트 대사의 입원비 명목으로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비는 대사관 측에서 부담했으며, 병원은 이 돈을 권씨에게 돌려줄 예정이다.

이런 반응들은 "한미동맹은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공고할 것"이라는 미 정부의 차분한 대응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특히 리퍼트 대사 및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과 구애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면서 국내에서는 지나친 반응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봉건적인 사고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리퍼트 대사에 대한 테러는 정말 잘못된 일이고 유감스럽지만 이에 대한 석고대죄 등 행동은 비굴한 것"이라며 "최초 미국에 간 우리나라 사신들이 대통령한테 무릎 꿇고 절한 것과 마찬가지 행동으로, 과한 행동은 오히려 나라의 체면을 깎는다"고 지적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상당히 흥미로운 현상"이라며 "미국이라는 존재가 절대화되어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개인의 일탈에 의한 공격을 받은 것인데 이를 마치 국가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며 "근대화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절대적인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전날 자신의 트위터에 "초현실주의적인 상황"이라며 "내가 리퍼트 대사라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한국인이 무서울 것 같다"고 적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이도연 기자 noma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