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10일(현지시간) G20 재무장관 회의가 끝난 뒤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과 양자회담을 앞두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10일(현지시간) G20 재무장관 회의가 끝난 뒤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과 양자회담을 앞두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조 개혁을 하려면 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 뭐만 잘못되면 나 때문이래. 내가 동네북이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기자들과 만나 “부총리가 법 개정하고, 여론 형성하고 온갖 것을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이같이 불만을 내비쳤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와의 이틀간 공식 회의를 마치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직후였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7월 ‘실세 부총리’로 취임해 확장적인 재정정책과 4대(노동·금융·공공·교육) 부문 구조개혁 등을 발표한 뒤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경제 수장으로서의 불만을 작심한 듯 털어놨다. 연말정산 논란에 이어 국회는 여야 구분 없이 ‘증세 없는 복지’ 논쟁을 벌이며 그가 터키 출장을 오기 직전까지 강하게 압박했다. 각종 경제활성화 대책에도 지난해 세수 결손액이 사상 최대(10조9000억원)에 달하자 정치권에선 그의 책임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최 부총리는 “똑똑한 사람들은 우리 경제가 이대로 가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가는 게 뻔한데도 모른 척하고 대충하고 (부총리직에서) 내려온다”며 “하지만 나는 무식해서 누가 뭐래도 진정성과 소명의식을 갖고 ‘불이야’라고 외쳤다”고 말했다. 이어 “그랬더니 ‘불이야’만 외치고 왜 못 끄냐고 타박한다”며 “불 끄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나 혼자 불을 끌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협조는커녕 사사건건 부총리를 압박하는 정치권을 겨냥한 발언이다.

‘증세 없는 복지’ 논쟁에 대한 발언 수위도 한 단계 높였다. 최 부총리는 “복지를 줄이는 것도 쉽지 않고, 연말정산 사태에서도 봤듯이 증세도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둘 다 지난(至難)한 문제”라며 “국민 컨센서스(공감대)가 없으면 혼란만 초래하고 결론 없이 국론만 분열시킨다”고 우려했다. 이어 “복지 문제와 세금 부담, 재정 수지 등 모든 것을 고려해 최적의 조합을 찾아야 한다”며 “한글로 ‘복지’라고 쓰지만 다들 다른 언어로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복지를 낮은 수준의 저복지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이미 저복지가 아니다”고 진단했다. “단순 숫자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 한국 정부의 복지지출 비중이 낮아 보이지만 복지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나는 통계 오독으로 이미 고복지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최 부총리는 4대 부문 구조개혁의 진정성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최근 OECD도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며 “한국의 미래인 청년을 위해서 노동과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부 대학생들은 이를 반대하는 대자보를 붙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G20 회의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조언한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라는 말도 소개했다. 이 말은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 벌어진 내란을 종식시킨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이다. 최 부총리는 “구조개혁은 거북이와 같은 자세가 견지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의미 있는 조언”이라며 “올해 꾸준하게 구조개혁에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스탄불=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