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 10시까지 재봉틀 돌려요” > 지난달 26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 있는 한 봉제공장 1층 작업실에서 중국 근로자들이 옷을 만들고 있다. 이 공장의 2층 작업실에는 북한 근로자들이 똑같은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단둥=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 “밤 10시까지 재봉틀 돌려요” > 지난달 26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 있는 한 봉제공장 1층 작업실에서 중국 근로자들이 옷을 만들고 있다. 이 공장의 2층 작업실에는 북한 근로자들이 똑같은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단둥=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지난달 26일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는 중국 단둥 외곽의 한 봉제공장. 방음이 제대로 안되는 낡은 건물에 ‘드르륵’ 하는 재봉틀 소리가 요란했다. 1층 작업장에는 여공들이 다닥다닥 붙어앉아 박음질하거나 옷감을 재단하고 있었다. 휘날리는 실밥과 솜털로 공기가 탁했다. 1층에는 중국인, 2층에는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공장의 중국인 직원은 2층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난색을 표했다. 한국인이 방문한 사실이 발각되면 북한 당국이 파견 관리자를 처벌하고 근로자를 전부 철수시키기 때문이다.

중국인들과 철저히 격리

여러 차례 부탁한 끝에 사무실 컴퓨터에 연결된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300여명의 북한 근로자를 볼 수 있었다. 화면 속 북한 여공들은 중국 노동자보다 어리고 몸집도 왜소해보였다. 햇빛을 보지 못해서인지 낯빛도 창백했다. 90%가 20대 미혼 여성이라고 했다. 작업라인 7개는 함께 파견 나온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감시원 4명이 감독하고 있었다.

이들이 받는 대우는 형편없다. 창살 없는 감옥, 그 자체다. 공장 직원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근로자를 받아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북한 근로자를 중국인들과 격리하는 것입니다. 작업장 동선을 분리하고 휴게실 식당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습니다.”

실제 근로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북한 보위부에서 파견된 관리자들의 실시간 감시를 받는다. 보위부 직원들은 근로자들의 작업 상태와 속도를 검사하고 식당이나 숙소로 이동할 때도 동행했다. 외국 TV와 라디오 시청 여부를 검열하고 매주 당 학습, 생활총화 등 세뇌교육을 실시한다고 한다. 근로자들이 가족과 연락하거나 외출할 때도 별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평균 임금 中 근로자의 절반

노동여건은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다. 북한 근로자들은 아침 7시30분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한다. 오전 휴식시간은 화장실을 갈 수 있는 10분이 전부다. 낮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을 마치면 저녁 7시까지 작업을 한다. 이어 저녁 8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야간작업을 한다. 일감이 밀리면 밤샘 연장근무도 한다. 한 달에 쉬는 날은 하루에서 이틀 정도다. 숙식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이렇게 일해서 받는 월급은 신입 여공의 경우 2000위안(한국돈 약 36만원). 이 중 70~80%를 당에 상납하고 자신의 몫으로 떨어지는 것은 200위안(약 4만원)이다.

해외로 배달되는 노동신문 구독료 1달러와 평양 김일성 동상에 ‘국외 노동자 일동’ 명목으로 바치는 꽃바구니 비용 2달러 등을 공제하고 나면 전체 월급의 10%만 손에 쥐게 된다.

다른 나라로 파견된 노동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러시아 벌목 현장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의 월급은 500달러, 체코슬로바키아 봉제공장은 150달러 정도다. 항공비용과 현지 물가에 따른 체류비용을 감안하면 평균 월급은 30달러 수준으로 중국과 비슷하다는 게 현지인의 얘기다.

북한 근로자들의 고용 선호도는 무척 높은 편이다. 시간 외 근무가 가능하고 각종 사회보험에 가입시킬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 봉제공장의 경우 북한 숙련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2000~2500위안(36만~45만원), 숙식비를 포함하면 3000위안(55만원) 수준이다. 사회보험, 퇴직금 등 비용을 포함한 중국의 초급 노동자 월급이 최소 4000위안(72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건비를 절반가량으로 줄일 수 있다. 한 조선족 기업인은 “단둥 지역에 총 1만여명의 북한 근로자가 나와 있는데 비교적 성실하고 일도 잘해 사업주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해외 근로도 특권으로 통해

단순 노동직에 월급도 터무니없이 적지만 해외 근무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적어도 북한에서 받는 급료보다는 많이 받는 데다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들 자원자에게 국제사회의 ‘노예 노동’ 논란은 전혀 실감나지 않는 얘기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당 고위 간부에게 수백달러의 뇌물을 바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출신 성분도 좋아야 한다. 북한 당국은 탈북 가능성을 우려해 성분이 좋지 않거나 전과가 있는 범죄자는 제외한다.

단둥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은 “이곳에 나온 사람 중 군인이나 외교관 등 당 간부의 딸이 많다”며 “돈도 벌고 중국어도 배울 수 있어서 다들 부러워한다”고 했다.

이렇게 합법적으로 탈북한 노동자들은 지정된 작업장 외에 부업이나 청부업으로 돈을 벌기도 한다. 해외로 나가는 과정에서 뇌물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위부 감시원과 작업반장에게 부업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또다시 뇌물을 제공하고 ‘투잡’에 뛰어든다. 밤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지만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접경지역의 한 관계자는 “현지 공장에서 제공하는 생필품을 팔고 부업으로 번 돈을 밑천으로 장사하는 근로자들도 생겨나고 있다”며 “관리자들에게 바치는 뇌물을 제하더라도 ‘남는 장사’라는 말이 많다”고 전했다.

■ 노동당 39호실

북한 최고 권력자의 통치자금 등 사금고를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조직. 산하에 해외지부 17개, 무역회사 100여개를 두고 각종 외화벌이 사업을 총지휘한다.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폐쇄했다.

■ 특별취재팀

선양·단둥·옌지·훈춘=조일훈 경제부장/김병언 차장(영상정보부)/김태완 차장(국제부)/김유미(경제부)/전예진(정치부) 기자/천용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