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주 노동자들 > 배급만으로 먹고살 수 없게 된 북한 주민들에게 중국은 기회의 땅이다. 돈을 벌어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이들은 강을 건넌다. 중국 단둥 압록강철교에서 바라본 북한 신의주의 노동자들. 단둥=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 신의주 노동자들 > 배급만으로 먹고살 수 없게 된 북한 주민들에게 중국은 기회의 땅이다. 돈을 벌어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이들은 강을 건넌다. 중국 단둥 압록강철교에서 바라본 북한 신의주의 노동자들. 단둥=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A씨(36·여)는 7개월 전 북한에서 나온 ‘탈북자’다. 중국 옌볜에서 차로 서너 시간 걸리는 한 식당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번다. 이렇게 번 돈은 사전에 매수한 중국과 북한 내 송금 브로커를 통해 북한 내 가족에게 부치고, 나머지로는 빚을 갚는다. 여기 나오기 위해 북한 내 보위부에 1000달러(약 110만원)라는 거금을 건넸었다. 물론 이 큰돈이 수중에 있을 리가 없었다. 중국에 있는 친척 보증 등을 통해 고리대로 빌린 돈이었다. “나오려고 들인 돈이 얼마인데. 빚 갚고 1000달러는 더 만들어 돌아가야지요.”

탈북자들 이용하는 고리대금업

[김정은 집권 3년…격랑의 북한 경제] '배고파 탈북'→'돈벌러 탈북'…취업·장사 위해 1000弗로 도강
그의 탈북은 역설적으로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돈 벌어 좀 더 잘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1990년대 대기근 당시 굶어죽지 않으려고 두만강을 헤엄쳐 나오던 생존형 탈북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도무지 기회가 없는 취업과 장사를 하기 위해 나왔을 뿐이다. 게다가 대다수는 북한 내 장마당(시장)을 살피며 시장 원리를 체득한 터다. 이들에게 시장은 기회다.

취재팀은 중국 옌볜과 단둥 등에서 이 같은 탈북사례를 자주 접했다. 북한으로 언젠가는 돌아가는 것이 목표인 이들 사례는 엄밀한 의미에서 탈북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한 체제가 챙겨주는 임금과 배급 질서를 이탈해 다른 살 길을 찾는다는 점에서 기존 탈북 개념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회귀형 탈북’은 이곳 접경지역에서 이미 일상적이다. 옌볜의 대북사업가 B씨는 “북한 주민이 보위부에 1000달러 정도 주면 중국을 나오는 것은 일도 아니다”고 전했다. 담보는 중국에 있는 친척에게 부탁하거나 고리 대금업자나 큰 상인들에게 높은 이자로 빌리기도 한다. 이때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담보 겸 볼모가 되는 식이다.

분명한 탈북이지만 돈 받은 간부들이 눈감아주기 때문에 가족들이 위험에 처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신 탈북자가 북한으로 돌아올 때 2000달러나 3000달러는 만들어와야 한다.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고 이를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지속되는 한, 이 희한한 한시적 탈북 시스템은 계속 순환할 수 있다.

접경지역에서 먼 내륙에서 나오려면 더 많은 돈이 들 수밖에 없다. 북한 보위부에서도 힘이 있다는 외사과 과장이 탈북자에게 돈을 받으면 절반은 국경 경비대나 다른 고위직과 나눠 입막음을 한다. 또 국경지역 사람들에게 연계시켜준다. 일자리를 주선하는 중국 내 브로커가 끼는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돈을 연결고리로 해서 ‘탈북 사업’이라는 지하경제가 돌아간다.

벌금 내더라도 해외 머무는 게 이익

과거 북한 주민들은 식량난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다. 1990년대 후반 중국으로 나온 탈북자 수는 10만명에 이르며 정점을 이뤘다. 식량 상황이 나아진 2000년대 후반부터는 재중 탈북자 규모가 5만명 이하로 감소했다는 게 관련 단체들의 추산이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년대 중반까지는 탈북의 계기가 기근 아니면 체제불만이었다”며 “이제는 세대별·계층별로 탈북 계기가 다양화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든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북한 내 간부에게 돈을 주고 3개월짜리 비자를 받아 중국에 나오는 것이다. 체류기간을 넘기면 한 달에 500위안을 보위부에 벌금으로 내야 한다. 1년이면 6000위안(한국돈 약 108만원)이니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러나 벌금을 내더라도 해외에서 체류 가능한 3년을 꼬박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에서 일을 하면 한 달에 2000~3000위안까지도 벌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훨씬 이득이다.

끈 떨어진 사업가들도 탈북행렬

탈북 여성들은 신분보장과 안전을 위해 중국에서 자의반 타의반 결혼하는 경우가 잦다.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공안이 출동하면 꼼짝없이 북송된다. 보상금을 노린 제보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엄마 없이 남겨지는 아이들이 중국에 많다고 한다.

사업가나 상인들이 경제적 이유로 탈북하는 사례도 잦아지고 있다. 자신의 뒤를 봐주고 있는 북한 관리자들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보따리 장사 등을 통해 돈을 버는 이들은 대부분 북한 내 고위직과 돈 관계로 엮여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챙겨줬던 고위직이 권력싸움에서 밀려나면 사업기회를 잃고 목숨조차 위태로워진다. 때문에 검열 대상에 오르기 전에 돈을 챙겨 탈북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 충성의 외화벌이 운동

북한이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외화벌이 사업. 김정일의 통치자금을 위해 인민들이 금, 은, 토끼 가죽, 송이버섯, 수산물 등 할당량만큼 국가에 의무적으로 바치는 것을 말한다.

■ 특별취재팀

선양·단둥·옌지·훈춘=조일훈 경제부장/김병언 차장(영상정보부)/김태완 차장(국제부)/김유미(경제부)/전예진(정치부) 기자/천용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