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행위 악습 제정러시아서 유래…라이터불로 지지기 등 다양
복무기간 1년으로 준 것도 폭력 감소 기여


러시아는 군대 내 폭력과 가혹행위가 심하기로 악명높은 나라였다.

제정 러시아 시절 군대 때부터 내려오는 기상천외한 가혹행위의 악습이 소련의 적군 시절을 거치면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소련 붕괴 이후 혼란에 휩싸인 러시아 군대에서 기승을 부렸다.

군대 내 폭력과 가혹행위를 일컫는 '데도프쉬나'(Dedovschina)란 용어가 생길 정도로 폭력은 일반화됐다.

'데드'(할아버지)로 불리는 고참 병사들이 신참 병사들을 상대로 휘두르는 폭력이란 의미다.

데도프쉬나의 방법은 가지각색이었다.

주먹이나 삽, 총기 등으로 폭행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선임병들이 두 줄로 열지어 선 채 사이를 지나가는 후임병을 양편에서 집단폭행하거나 후임병의 몸을 거꾸로 들어 머리를 화장실 변기통에 처박기도 했다.

후임병의 발이나 얼굴을 라이터불, 담뱃불로 지지는가 하면 스스로 머리를 벽에 처박게 강요하기도 했다.

부대 내에서 성희롱을 하거나 심지어 부대 밖에서 남창을 강요해 화대를 챙기는 일도 적발됐다.

러시아 군대의 고질적 병폐였던 데도프쉬나가 드러나 한국의 윤 일병 사건처럼 사회적 충격을 던진 것은 2006년 시초프 사병 폭행 사건 때다.

중부 우랄산맥 인근 첼랴빈스크의 탱크교육학교에 근무하던 19세 징집병 안드레이 시초프가 같은 부대의 하사관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해 두 다리와 생식기를 절단하게 된 사건이 알려지면서 일대 파문이 인 것이다.

시초프는 새해 첫날 새벽 술에 취해 들어온 하사관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한 뒤 두 다리를 양쪽 의자에 묶인 채 반쯤 구부려 앉은 자세로 몇 시간을 버티는 얼차려를 받다 쓰러졌다.

그 뒤 하반신에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살이 썩어들어가는 괴저(壞疽) 현상이 일어나 결국 신체 부위들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 사건으로 군대 내 가혹행위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자 당시 2기 집권 중이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데도프쉬나 수사를 전담하는 '군 경찰'(Military Police) 창설을 지시했다.

하지만 뿌리깊은 악습은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2011년 9월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사병이 자살하는 사건이 또 한 번 러시아를 뒤흔들었다.

우랄산맥 인근 도시인 스베르들로프스크의 한 군부대에서 근무하던 신참 병사 루슬란 아이데르하노프가 자대 배치 몇 개월 만에 부대 인근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해당 부대는 어머니 사망에 따른 정신적 충격으로 말미암은 자살로 결론짓고 아이데르하노프의 시신을 담은 관을 가족들에게로 보냈으나 시신을 민간 전문가들에게 맡겨 검시한 결과 심한 폭행 흔적이 발견됐다.

이가 빠지고 발뼈가 부러져 있었으며 자상과 성폭행 흔적까지 발견된 것이다.

이에 가족들은 타살이나 가혹행위에 따른 자살이라고 주장하며 재수사를 촉구했으나 군 검찰은 이후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러시아의 군대 내 폭력은 지금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 국방부 자료를 인용한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총기 사건이나 자살 등으로 인한 군인 사망자가 2012년에도 339명에 달했다.

이 중 상당수가 군대 내 폭력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군대 내 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가 강력한 대응에 나서면서 가혹행위는 많이 줄어드는 추세다.

폭력 근절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신설된 군 경찰 제도다.

2006년 시초프 사병 폭행 사건 이후 검토되던 군 경찰은 2010년 창설돼 본격적인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올해 초엔 국방부령으로 운영되던 군 경찰 제도가 법률 제정으로 완전히 입법화했다.

각 단위급 군부대가 아니라 국방부 직속 기관의 지위를 지닌 군 경찰은 군대 내 선후임 병사들 간의 폭력 사건 수사를 기본 임무로 하고 있다.

모든 군부대엔 군 경찰 책임자의 전화번호가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다.

문제가 있으면 군인 본인은 물론 친인척들도 이 번호로 전화를 할 수 있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이달 초 기자회견에서 "군 경찰이 군대 내 폭력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올 상반기 폭력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나 줄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중반 군 경찰 수장에 임명된 이고리 시도르케비치 대령은 "군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이 데도프쉬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하게 될 때까지 군대 내 폭력 근절 활동을 강도 높게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다짐했다.

그전까지 2년이던 징집병의 군 복무 기간이 2008년부터 1년으로 단축된 것도 군 폭력이 줄어든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신병도 6개월만 지나면 고참이 되기 때문에 병사들 사이에 악감정이나 불만이 쌓일 일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이밖에 군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진 것도 폭력 감소에 기여하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