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vs 비노 당권·공천싸움 11년
자파 이익 안맞으면 탈당도 불사
< 논산훈련소 찾은 박영선 위원장 >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가운데)이 6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를 방문해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앞둔 훈련병과 가족들을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 논산훈련소 찾은 박영선 위원장 >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가운데)이 6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를 방문해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앞둔 훈련병과 가족들을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그동안 고질적 병폐로 꼽혀온 당내 계파 갈등 문제 해소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박 위원장은 6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그 부분(계파 갈등)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새정치연합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당 안팎에서 7·30 재·보궐 참패 이후 박 위원장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계파 갈등을 꼽고 있지만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영선 "계파 초월 못하면 黨 미래 없다"…새정치연합 계파갈등 어느 정도길래 …

새정치연합의 계파 갈등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도한 열린우리당 창당을 기점으로 친노계와 옛 민주계 간 갈등이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 대통령 지지율 하락으로 열린우리당은 또 한번 심각한 내홍을 겪는다. 탈당이 잇따르면서 사실상 당이 둘로 쪼개졌다. 이때 탈당파의 핵심 인물이 김한길 전 공동대표와 정동영 상임고문, 천정배 전 법무장관 등이다. 당에 남았던 대표적 잔류 인사로는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가 꼽힌다.

이들 두 세력 간 충돌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아울러 대선 전 영입됐지만 야권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손학규 상임고문, 대선 후 당 수습을 맡았던 정세균 상임고문 등도 착실히 자신의 세력을 키웠다.

2011년 당시 대표를 맡고 있던 손 고문의 주도로 민주통합당이 탄생했다. 2012년 초 전당대회에서 한 전 총리가 대표로 선출됐다. 이어 4월 실시된 19대 총선에서 친노계 인사들이 대거 공천을 받았다. 특히 ‘나꼼수’ 출신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이 일면서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은 극에 달했다. 결국 이길 수 있었던 선거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고 한 전 총리가 물러났다.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기 위한 전당대회가 2012년 6월 치러졌다. 이해찬 전 총리와 김한길 전 공동대표가 맞붙었지만 아슬아슬한 표차로 이 전 총리가 이겼다. 김 전 대표는 친노계의 전횡을 강하게 비판하며 승부를 걸었지만 무릎을 꿇었다. 이후 대선 후보로 문재인 상임고문을 낸 친노계는 경선 과정에서 다른 계파의 거센 반발을 감내해야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친노계는 2013년 비노계의 수장 격인 김한길 전 대표에게 당권을 내줬다. 그러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파문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세 결집에 성공했고 “김한길 지도부가 미온적인 대처로 정부·여당에 끌려다니고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참여로 지난 3월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한 뒤에도 계파 갈등은 계속됐다. 6·4 지방선거에서 안 전 대표 측 윤장현 광주시장을 공천하자 범 친노계인 이용섭 전 의원이 탈당 후 출마했다. 7·30 재·보선에서도 기동민·권은희 후보 공천을 놓고 당내에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정치권 관계자는 “계파 갈등을 해소한다는 것은 곧 공천 과정에서의 잡음을 최대한 줄인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며 “학연 지연 혈연 등 ‘보스’와의 인연이 아닌 분명한 가치와 철학 중심의 정당으로 거듭나야 비로소 계파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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