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한 여야 기싸움 속에서 인사청문회가 공직 후보자의 사전 능력 검증이라는 본래 기능을 상실하고, 정치권의 정략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후보자 흠집 내기를 위해 능력 검증과 상관없는 엉뚱한 질문이 쏟아지기 일쑤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들이대는 도덕적 기준 역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하는 ‘고무줄 잣대’라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청문회 이대로 괜찮나] 자녀 씀씀이·배우자 암수술까지 도마에 올라
○친인척 개인사까지 파헤치기

현 인사청문회 제도에선 후보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무차별 검증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상 검증은 물론 가족사 파헤치기, 재산 축적 과정 등 후보자와 주변인의 과거 일거수일투족이 공격 타깃이 된다.

2009년 9월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느닷없이 정 전 총리 아들의 통 큰 씀씀이가 도마에 올랐다. 당시 민주당 소속의 김종률 의원은 “정 후보의 장남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매달 500만원이 넘는 1억8000만원을 카드로 쓰고 외제차를 타고 다녔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정 후보자는 “아이가 금융 회사에 다니는데 열심히 일하기 위해 외국에서 비싼 소프트웨어를 산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치권이 자격 검증을 이유로 후보자에 요구하는 자료 역시 무리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컨대 지난 4년간의 골프장 출입기록과 동반자 명단, 경비 출처, 4촌 이내 친인척의 해외 여행 기록 및 경비 출처 등 그야말로 바닥 훑기식 자료를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자녀 이혼, 배우자 암수술 등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개인사까지 공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중잣대 적용이 고질적인 문제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에 적용하는 모호한 잣대와 고무줄 기준도 고질적인 문제다. 비슷한 사안도 당시 정치 상황과 사회 분위기에 따라 결론이 달라졌다. 똑같은 위장전입 문제로 2002년 장상 총리 후보자는 낙마했지만, 2009년 김준규 전 검찰총장은 기사회생했다. 청문회의 단골 쟁점인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해서도 후보자 간 희비가 엇갈렸다. 2010년 8월 ‘쪽방촌 투기’ 의혹을 받았던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역시 적법한 투자였다는 정치권 일각의 옹호론에도 불구하고 여론 재판식 비난에 밀려 결국 낙마했다.

이른바 ‘한 건’을 터뜨리겠다는 마음이 앞서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공격을 남발하는 경우도 많다. 2008년 3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은 당시 유 후보자가 투자한 일본 국채를 문제 삼았다. 야당 의원들은 “일본 국채에 수십억원을 투자했고 세금도 안 냈다”고 세금 탈루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일본 국채에 대한 투자 수익은 원래 비과세 대상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여기서 한술 더떠 “국민 정서도 있는데 왜 하필 일본 국채에 투자했느냐”고 질책하기도 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