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안전불감증에 빠진 대한민국
지난 몇 달을 돌아보면 ‘사고공화국’이란 말이 과언이 아니다. 경주의 리조트 붕괴와 세월호 참사가 끝일 줄 알았다. 아니었다. 정부는 연일 안전을 강조하지만 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학생들이 공부하는 고등학교에선 불이 났다. 지하철은 하루가 멀다하고 멈춰선다. 국민은 불안하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정부책임론을 들고나온 건 이미 오래전이다. 박근혜 정부는 유구무언이다. 안전을 최우선순위에 두겠다며 부처 이름까지 안전행정부로 바꾼 터다. 의욕적으로 만든 안전시스템은 정작 위기상황서 작동하지 않았다. 민심이 등을 돌렸고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은 총리를 경질하고 중폭의 개각을 단행했다.

국민 절반 무단횡단하는 나라

이것도 모자라 국가개조론까지 꺼냈다. 박 대통령은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썼다. 단지 세월호 참사의 후폭풍을 잠재우는 게 목표였다면 어느 정도 성공했다. 국정 지지도도 소폭이나마 반등하고 있는 게 이를 보여준다.

정부가 세월호 민심수습에만 급급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국민의 뼛속까지 파고든 안전불감증에 대한 대책이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던진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일지도 모른다.

안전불감증은 안보불감증 못지않다. 김정은의 ‘서울 불바다’ 발언에도,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져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국민이다. 도발한 북한의 김정은이 기가 찰 노릇이다. 안보불감증의 저변엔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 자리하고 있다.

안전불감증도 다를 바 없다. 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절반 가까운 42%가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솔직히 답했다면 수치가 올라가면 올라갔지 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무단횡단이 일상화돼 있는 현실이다. ‘이쯤이야’하며 오늘도 도로를 아무 생각 없이 무단횡단하는 사람들. ‘나는 사고와 무관할 것’이라며 정량을 초과해 화물을 싣고 도로를 질주하는 사람들. ‘설마’하며 다중시설 대피로를 막고 영업하는 사람들.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 그들만의 얘기라고 치부하고 싶지만, 바로 안전불감증에 빠져 매일매일 요행을 바라며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설마, 이 큰 배가 가라앉겠어’라는 세월호 책임자들의 안전불감증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사방에 ‘제2, 제3의 세월호’가 널려 있다.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 공화국이다.

국민의식 개조가 먼저

이렇게 일상화된 국민의 안전불감증이 존재하는 한 정부의 갖가지 대책이 무슨 소용이겠나. 장관을 절반 이상 바꾸고 국가안전처를 만든다고 사방에 도사리고 있는 안전사고를 피해갈 순 없다. 국가를 개조한다는 거창한 화두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안전불감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안전한 대한민국은 기대할 수 없다. 안전에 대한 국민 의식을 바꾸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이 시점에서 국가개조보다 더 중요한 게 국민의식 개조다. 우리 모두가 마음속의 안전불감증을 걷어내지 않는 한 정부 정책도 무용지물이다. 오늘 당장 정부와 정치권, 국민 모두가 안전생활을 실천하는 캠페인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이재창 지식사회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