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대국민사과·남재준 첫사과로 사태수습 노린듯
선거악영향 차단 뜻도…野파상공세로 논란은 지속전망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국정원의 환골탈태를 강도높게 주문한 것은 이번 사안의 무게와 파장을 고려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때맞춰 남재준 국정원장이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국정원 쇄신책 마련을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유감스럽게도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체계에 허점이 드러나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실상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정원은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또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력한 책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여권에서는 유사 사태 재발시 남 원장에 대한 인사조치를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은 지난해 9월 기초연금 축소 등 복지공약 후퇴 논란과 관련해 '사과'한 이후 약 7개월 만으로 취임 이후 네 번째다.

새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4월 부실 인사검증으로 장·차관 낙마 사태를 불러온데 대해 민주당 지도부와의 만찬자리에서 사과의 뜻을 표한 것을 제외하면 3번째 대국민 사과다.

그만큼 국가정보의 중추인 국정원이 수사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이번 사건을 박 대통령이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에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이상 논란이 확산하는 것을 막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비록 검찰수사에서 남 원장 등의 개입 여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국정원의 위법 행위는 사실로 확인된 만큼, '원칙·신뢰'를 모토로 하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정원이 달라진 게 없다는 부정적 여론이 선거를 앞두고 더 확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등을 거치며 야권과 시민단체 등의 대대적인 국정원 개혁 요구에 대해 청와대가 국정원의 '자체 쇄신책 마련'으로 선을 그어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의 후폭풍이 자칫 국정원의 테두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정부 일각의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 원장이 국무회의가 열린 같은 시각인 오전 10시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이례적인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것도 사안의 엄중함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남 원장은 사과문을 통해 "'중국 화교 유가강(유우성) 간첩사건'과 관련해 증거 서류 조작 의혹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수사 관행을 점검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아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개혁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남 원장은 지난해 3월 임명 이후 국정원 대선댓글 사건이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파문 당시에도 사과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검찰 수사결과 발표 하루 만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국정원 대공수사 책임자인 서천호 2차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박 대통령이 이를 즉각 수리한 점이나, 남 원장이 자신의 거취는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볼 때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서 2차장의 사표수리와 국정원의 쇄신책 마련이라는 선에서 수습하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남 원장이 이날 사과문에서 "이런 위중한 시기에 국정원이 환골탈태해 새로운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기회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정원장으로서 책임지겠다"한 것에서도 이러한 기류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전날 서천호 2차장 사표 수리에 대해 "남 원장은 비겁하게 부하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며 압박 수위를 높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남 원장의 대국민 사과를 계기로 특검도입과 남 원장 해임 등을 주장하며 공세의 수위를 더욱 높일 것으로 보여 당분간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sou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