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헤이그서 한·미·일 정상회담] 22개월 만에 마주앉는 한·일 정상…'해양동맹'은 이어간다
정부가 핵안보정상회의를 사흘 앞두고 한·미·일 3자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했다. 최근 일본 외무성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에 진지하고 성의있게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국장급 협의를 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사 문제로 얼어붙은 한·일 관계가 개선의 단초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靑 아닌 외교부가 발표한 이유는

정부는 그동안 한·일 양자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3자 회담 가능성에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주요 외신이 한·미·일 3자 정상회담 개최를 보도한 21일 오전까지도 확답을 피했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미·일 3자 정상회담은 외교부에서 발표할 것이고 그 이유도 외교부가 설명할 것”이라며 공을 넘겼다. 외교부는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대변인 명의로 회담 개최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한·미·일 정상회담에 응한 결정적 계기는 일본이 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데 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 12일 방한한 사이키 아키타카군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우리 측에 군 위안부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안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최근 국회 답변을 통해 거듭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이례적으로 이번 정상회담 사실을 청와대가 아닌 외교부가 발표한 것은 이런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외교부가 발표한 데 대해 일본과 과거사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일 정상 간 만남을 바라보는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과 영토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을 의식했다는 얘기도 나돈다.

한·미·일 정상회담 성사에는 미국의 입김도 작용했다. 미국은 이번 3자 회담을 제안하고 냉각된 한·일 관계를 감안해 양국 정상을 초청하는 형태로 회담을 추진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방한 때 한·일 간 관계 개선을 주문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미·일 3각 동맹을 공고히 함으로써 해양 주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했던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도 일본과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지만 ‘해양 동맹’의 끈을 견고하게 가져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만 중국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별도로 한·중 정상 회담을 개최한다.

미국은 또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정상회담을 추진했다는 관측도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은 불투명

3국 정상회담에서는 북핵과 핵 비확산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진다. 한·일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과거사 문제는 공식 의제에서 배제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북한이 국방위원회 성명으로 핵 억지력 과시로 위협한 점을 고려할 때 한·미·일 정상회담이 시의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북핵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임을 시사했다.

외교가는 이번 3자 회담이 일본과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겠지만 양국 관계 개선의 본격적인 전기가 될지는 불투명하다고 관측하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등 등 양국 간 갈등을 심화시킬 요인이 적지 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헤이그, 고종 황제 밀사 찾았던 곳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헤이그는 107년 전인 1907년 6월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 고종 황제의 밀사 3명이 일제 침략상을 알리기 위해 찾았던 도시다. 이들은 일본의 방해와 열강 정부의 냉대 탓에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