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비판언급 전년比 56%↑…절제됐지만 고강도 `반성' 주문
작년 3차핵실험 北에 단호…이산가족상봉 뒤인 이번엔 온화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후 두 번째인 올해 3·1절 기념사는 크게 일본과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로 구성돼 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최근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우경화 행보에 대해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조목조목 '강도높게' 비판을 가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을 향해서는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보다 더 진전된 신뢰를 쌓아가 '평화 통일'을 이룩하자는 메시지에 방점을 두면서도 북핵 포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지적했다.

◇ 대일 메시지 '강경'…분량 56%나 늘어 = 박 대통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전면에 나서 주도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극단적' 우경화 행보에 대해 날선 비판을 했다.

다만 아베 총리를 직접 언급하거나 자극적 표현은 자제했다.

자칫 양국 관계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와 함께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중순 방한해 "한국과 일본이 좀 역사는 극복하고,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 좋지 않느냐하고 생각한다"며 '미국의 입장'을 전달한 것도 어느 정도 감안해 수위조절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최근 일본 정부의 '문제적 행동'은 조목조목 지적했다.

지난해 3·1절 기념사에 비해 일본 관련 언급 분량이 456자에서 710자로 56%나 늘어난 것이 그 방증이다.

지난해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내용이 훨씬 더 구체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우선 지난해 말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고노 담화 검증 시도를 겨냥,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협력관계를 발전시켜올 수 있었던 것은 평화헌법을 토대로 주변국들과 선린우호 관계를 증진하고, 무라야마·고노 담화 등을 통해 식민 지배와 침략을 반성하면서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던 역사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 나라의 역사인식은 그 나라가 나아갈 미래를 가리키는 나침반"이라며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지 못하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없고,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를 겨냥한 '비판'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려는 일본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박 대통령은 "한평생을 한 맺힌 억울함과 비통함 속에 살아오신, 이제 쉰다섯 분밖에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는 당연히 치유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의 진실은 살아있는 분들의 증언"이라며 "살아있는 진술과 증인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고 정치적 이해만을 위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다만 일본 정치권과 국민은 구분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쌓아온 한국과 일본, 양국 국민들의 우정과 신뢰를 정치가 막아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도 문화를 통해 양국 국민들은 마음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간 관계가 악화하면서 일본 내에서 혐한 기류가 형성되고, 양국간 경제 교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 것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인류 보편의 양심과 전후 독일 등의 선례에 따라 협력과 평화, 공영의 미래로 함께 갈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과거의 부정에서 벗어나 진실과 화해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길 기대한다"며 일본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 北에 '신뢰구축→평화통일'의 열매 강조 = 대북 메시지는 지난해보다는 '온화'해졌다.

지난해 3·1절 기념사가 2월12일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나왔지만, 올해 기념사는 3년4개월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이후에 나왔다는 점이 '온도차'의 배경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인 지난 25일 대국민 담화에서 제안한 '통일준비위원회'를 언급하면서 "평화통일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일에 대해 북한에서 의구심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 "평화통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 주목된다.

담화에서는 "체계적이고 건설적인 통일의 방향을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며 '통일'로만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통일 한국'이 가져올 '열매'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북한에 대해 '신뢰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하나된 민족, 통일된 한반도는 동북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또 통일된 한반도는 유라시아와 동북아를 연결하는 평화의 심장이 될 것이며, 동북아시아 국가들 역시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에서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찾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 그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이런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거듭 강조했다.

"평화와 협력의 새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북한이 핵을 내려놓고 남북 공동발전과 평화의 길을 선택할 것을 촉구한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핵포기가 평화·협력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기본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공식 제안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등에서 기존 이산가족 상봉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수차례 언급하던 것을 3·1절 기념사를 통해 공식 제안한 셈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sou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