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운데)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기현 정책위 의장, 오른쪽은 홍문종 사무총장. 연합뉴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운데)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기현 정책위 의장, 오른쪽은 홍문종 사무총장. 연합뉴스
지방을 지역구로 한 K의원은 최근 식사 도중 문자메시지를 받은 뒤 다급하게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말 예산심사에서 ‘슈퍼갑’인 예산안조정소위 동료의원이 의원회관에서 식사를 하고 있으니, 지역구 공무원으로부터 접수한 사업계획서를 전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곧바로 의원에게는 “서류 하나 보낸다”는 문자를 넣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조정소위 의원의 동선을 파악하고, 지역구 의원은 점심시간 보좌관을 대기시켜 놨다가 합동으로 예산 확보 민원을 한 것이다.

전주시 덕진구를 지역구로 하는 김성주 의원은 최근 전라북도 발전에 기여한 의정활동 내역을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김 의원은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등을 통과한 지역발전 예산으로 탄소밸리 구축기금 등 7개 사업에 637억여원을 확보했다. 김 의원은 “전북 발전을 위한 국가예산 확보에 차질이 없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면서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으려는 이른바 민원성 ‘쪽지예산’ 신청이 넘쳐나고 있다. 동료 의원은 물론 혈연, 지연, 학연을 총동원한 전방위 민원으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예결위는 지난주 상임위원회별 삭감 심사를 마무리하고 이번주부터 증액 심사에 들어갔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운데)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기현 정책위 의장, 오른쪽은 홍문종 사무총장. 연합뉴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운데)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김기현 정책위 의장, 오른쪽은 홍문종 사무총장. 연합뉴스
24일 예결위에 따르면 정보위원회를 제외한 15개 상임위가 요구한 증액 규모는 11조5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예년 사례를 감안할 때 상임위와는 별도로 예결위 차원의 증액 요구도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예결위는 상임위나 예결위의 ‘공식 창구’를 거치지 않고 은밀하게 요청하는 이른바 ‘쪽지예산’을 받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예결위 소속 복수위원들을 취재한 결과 현재까지 접수된 증액요청 사업은 1700여건에 달한다. 반면 삭감을 요청한 건수는 700여건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여야가 각각 추진하는 복지정책뿐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요청한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예산들이 모두 반영돼 있다.

예결위 소속 한 의원은 “‘쪽지예산’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가능하지도 않고, ‘쪽지예산’은 정부예산안을 보완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산 증액 및 편성을 요구하는 민원이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건복지위 국토교통위나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등 상임위에 속한 국회의원들이 지역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과 함께 전방위 로비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달 들어 국회 본청 6층 예결위원장실이나 예결위 여야 간사를 맡고 있는 김광림 의원과 최재천 의원실 앞에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10여명씩 상시 대기하면서 ‘민원기회’를 탐색하는 장면이 수시로 목격됐다.

현재 예결위는 증액 심사의 속도를 내고자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 간 협의 채널을 가동하고 있지만, 증액 요청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재원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예결위는 앞서 삭감 심사에서 1조4000억원가량을 감액한 것으로 알려졌다. 삭감 심사에서 보류된 120여개 사업에서 추가 삭감하더라도 여야가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은 최대 3조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예결위원은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감안하면 정부 지출을 더 늘리기는 어렵고, 삭감된 범위 내에서만 증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임위나 예결위의 증액 요구가 11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것을 감안하면, 여야가 최대 3조원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증액 요구의 4분의 1밖에 수용하기 어렵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 여야가 증액 과정에서 정부의 설득을 끌어내는 작업도 간단치 않다. 감액과 달리 증액을 위해서는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국회 심사권이 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