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내년 예산안 심사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경제 관련 주요 법안 심의도 여야 간 의견 차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8개월여간 이어진 정치권의 대치국면 여진이 계속되면서 마땅한 절충점을 찾고 있지 못해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연말 ‘예산 전쟁’에 화력을 집중할 태세여서 각종 민생·경제활성화 법안 처리가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질질 끄는 예산안 심사

예결위 산하 계수조정소위원회(예산안조정소위)는 당초 지난 16일까지 사업별 삭감 및 증액 심사를 완료하고 예산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 공약사업에 대한 의견 차로 17일 현재 삭감 작업조차 마치지 못했다. 소위는 늦어도 20일까지 삭감 작업을 끝내고 증액 심사에 나설 방침이지만, 심사 보류 사업만 30여개가 넘어 일정대로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

여야 신경전이 예산안 심사로 옮겨지면서 각종 법안 심의는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여야는 부동산시장 활성화 법안 중 하나인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소득세법 개정안)를 놓고 여전히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시장에선 여당이 이달 말 유예기간 종료(일몰)를 앞두고 민주당이 요구하는 전월세 상한제와 ‘빅딜’ 방식으로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은 빅딜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어 일몰 연장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는 “민주당이 요구하는 전월세 상한제가 향후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을 감안할 때 빅딜은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게 정부와 당의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외촉법 처리 해 넘길 가능성

청와대까지 나서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는 외국인투자촉진법 역시 ‘대기업 특혜법’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6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됐지만 양당 입장차가 커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민주당은 중소기업적합업종 특별법과의 연계 처리까지 요구하고 있어 법안 처리는 해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금융 관련 법안 심의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대부업 대출이자를 연 39% 이하로 제한하는 대부업법 개정안은 이달 말로 일몰이 도래하지만 아직 처리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자율 상한선을 30%로 낮춰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새누리당은 39%를 유지하되 일몰을 5년 연장하는 정부제출안을 처리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무위원회는 18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30%와 39% 사이에서 절충점을 모색할 예정이다.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처리가 시급한 ‘5대 금융관련 법안’으로 선정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 산업은행법(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 통합),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도 논의가 보류된 상태다. 산업은행법은 정책금융공사의 부산 이전을 요구하는 부산 지역 여당 의원들의 반발로 발의조차 안 됐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