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법안처리 제로 정기국회' 가능성도 대두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치하면서 올해 정기국회가 시작된 뒤 지금까지 3개월동안 국회는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악의 성적표다.

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정기국회가 시작된 지난 9월 2일 후 국회에서 처리한 법안수는 15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들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가결 또는 부결된 게 아니라 당초 법안을 발의했던 의원들이 스스로 철회한 것들이다.

19대 첫 정기국회였던 지난해에는 9∼11월 3개월간 119건의 법안이 통과됐다.

철회나 폐기 등을 포함할 경우 전체 처리법안은 286건에 달했다.

물론 대선을 앞두고 있던 정치상황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래도 작년에는 여야가 싸우면서도 기본적인 업무는 수행했다는 방증이다.

18대 국회 마지막 해인 2011년 정기국회에서는 같은 기간 55건의 법안이 통과됐다.

2010년의 경우에도 청원경찰법 입법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 등으로 정국이 얼어붙었지만 국회에서는 3건의 법안이 의결됐다.

2009년에는 이 기간 32건, 2008년에는 7건의 법안이 각각 통과됐다.

크건작건 '실적'이 있었던 것이다.

올해 법안처리 실적이 전무한 까닭은 여야의 강대강 대치로 국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거나 '정쟁의 장'이 됐음에도 이를 풀어내는 정치력이 부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야 합작품인 셈이다.

민주당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등에 대한 진상규명과 국정원 개혁 등을 요구하는 장외투쟁을 벌이다 9월 23일에야 원내로 복귀했다.

지난달 8일에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의 편파성을 주장하며 다시 국회 의사일정을 보이콧했고, 이어 11~13일에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사건 검찰수사에 대한 외압설에 반발해 인사청문회를 제외한 모든 의사일정 참여를 중단했다.

가장 최근엔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새누리당의 단독처리에 항의, 지난달 29일부터 국회 보이콧에 들어갔다.

현재로선 국회가 언제 정상화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정치력과 협상력 부재도 국회 공전에 또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여야간 대치가 조만간 해소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오는 10일 폐회하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법안 0건'이라는 초유의 불명예 기록을 남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만간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주요 법안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가 워낙 커서 입법성과를 제대로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폐지를 위한 소득세법,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경제활성화법 통과에 주력할 계획이지만, 민주당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고소득자 과세를 강화하는 소득세법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의 우선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각종 민생법안 처리가 늦어지면 국민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만큼, 법안 처리를 서두르고 싶은 것은 여야가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꼬인 정국을 풀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제자리걸음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hysu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