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野 요구에 답 됐을 것" vs 野 "대통령이 오히려 정국 악화"
상임위 전면 파행…감사원장 인준·예산안 심의 지연되나
與 '국회정상화-국정원특위' 빅딜 제의…野 "특검-특위는 패키지" 역제안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 내용에 대해 야권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정국이 다시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박 대통령은 18일 시정연설에서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한 민주당의 '원샷 특검' 수용 요구에 대해 "여야가 합의하면"을 전제로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야당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거나 특검 자체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대선 개입 의혹을 둘러싼 논란과 특검 도입 문제는 '정치권의 몫'임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사실상 국회에 공을 넘긴 셈이다.

국가정보원 개혁특위 신설 요구에 대해서도 국정원이 자체 개혁안을 제출하면 국회가 심의해달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를 놓고 여야의 해석이 극명히 엇갈리면서 양측의 대치가 다시 가팔라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요구를 상당히 수용해 답이 됐을 것"이라고 평가한 반면, 민주당은 "불통으로 야당과 국민을 무시했다.

정답은 없었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정국이 급속히 냉각하면서 이날 예정된 국토교통위원회와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도 모두 취소되는 등 모처럼 정상을 찾아가던 국회 운영이 다시 파행으로 치달았다.

특히 민주당은 상당히 격앙된 반응이어서 국회에 계류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와 여권이 추진 중인 주요 법안과 결산·예산안 심의에 상당 기간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시정연설 이후 오히려 정국 경색이 심화하는 기류가 감지되자 새누리당은 나름의 후속 대책을 내놓으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새누리당은 오후 긴급최고위원회의를 열어 '국회 정상화'를 전제로 국회 국가정보원 개혁특위 신설을 수용하겠다고 제의했다.

'국회 정상화'란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와 주요 법안 및 예산안의 회기 내 처리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번 역제안은 사실상 국정원 개혁특위와 여권의 정국 운영에 필요한 야당의 협조를 맞바꾸자는 '빅딜'인 셈이다.

다만 새누리당은 '원샷 특검' 요구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특검과 특위는 '패키지(한 묶음)"라며 특검과 특위의 동시 수용을 역제안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진상 규명은 특검으로 하고 재발 방지는 특위로 하자는 것이니,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패키지'"라며 "특검도 함께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놓고 민주당이 새누리당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제안을 정색하고 거부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여야 간 협상의 여지가 어느 정도 열리게 됐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최고위 결과 발표에 앞서 국회에서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를 긴급히 만나 이 같은 제안의 내용을 미리 알려줬지만, 양측은 서로 이견만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민주당은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끝내고 퇴장할 때부터 일부 의원이 기립하지 않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한 데 이어, 박 대통령이 국회를 떠나자마자 본청 계단에서 시정연설 내용에 대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집회에서 "최대 문제는 바로 대통령의 불통이다.

정국을 풀어야 할 당사자인 대통령이 오히려 정국을 악화하고 있다"면서 "야당 무시, 민심 무시이다.

이대로 간다면 국민이 더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야당의 특검 요구를 '조건부 수용'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이제 정쟁을 접고 민생 법안과 예산안 처리에 협조해 달라고 압박했다.

새누리당 유일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 "야당이 줄기차게 요구한 주장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됐을 것"이라며 "국정 발목 잡기와 반대를 위한 반대는 이제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