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법 어기는 입법기관

'상임위원장 배분' 신경전…개원하는데 평균 54일…예산안 시한도 10년째 넘겨
'저격수 배치' 차원…상임위원도 수시로 바꿔
폭력금지·국회출석 의무…있으나마나한 조항
[창간 49주년 - 독주하는 국회권력] 法 만드는 의원? 法 흔드는 의원!

“제1차 본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2012년 12월31일 밤 11시56분, 강창희 국회의장.

“그러면 차수 변경을 위해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산회선포)” 밤 11시57분.

“제2차 본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2013년 1월1일 0시1분.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교섭단체 간의 논의를 위해 잠시 정회하도록 하겠습니다.(정회선포)” 0시2분.

지난 연말연시의 국회 본회의장 모습이다. 예산안 처리의 법정 시한을 넘긴 국회는 해를 넘겨 처리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연도가 바뀌기 4분 전에 본회의를 열었다. 연도가 바뀌면 회의를 계속할 수 없기 때문에 회의 연장을 결의하기 위해 회의를 연 것이다. 실제 이때까지 예산안은 예결위 심사를 끝마치지 못했다. 결국 새해 예산안은 1월1일 새벽 5시30분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는 예산안을 새 회계연도의 30일 전인 12월2일까지 의결해야 한다. 헌법 54조2항이 규정한 내용이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스스로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국회의 예산안 관련 헌법 위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6공화국이 시작된 1988년부터 작년까지 예산안을 국회가 헌법대로 처리한 경우는 6차례에 불과했다. 19번은 시한을 넘겼다. 법을 위반한 것이다. 헌법을 지킨 6차례는 모두 대선이 있는 해였다. 2002년 이후 10년 연속 법 위반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국회법 어기는 건 예사

국회법 위반은 다반사다. 위반 사례를 다 열거하기도 힘들다. 밥 먹듯이 법을 위반하고 있어서다.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국회는 국회법 6개 조항을 상시로 위반한다. 대부분 국회 운영에 관한 사항이다. 국회법 147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회 내 폭력은 제외하고도 그렇다.

국회에서 상시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규정은 총선 뒤 새로 만드는 국회의 원 구성이 대표적이다. 국회법은 임기 개시 뒤 7일 안(6월5일)에 첫 본회의를 열어(5조3항) 국회의장단을 선출(15조2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 운영의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는 상임위원회 구성은 첫 본회의부터 3일 안에 마쳐야 한다.(국회법 41조3항)

그러나 여야가 협상을 통해 상임위원장 자리를 배분하기 시작한 13대 국회 이후 개원 일정이 제대로 지켜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13대부터 18대 국회까지 상임위 구성이 완료돼 국회가 본격 가동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54일이다. 18대 국회 때는 ‘광우병 사태’의 여파로 의장단 선출에 41일, 상임위원장 선출에 88일이나 걸렸다.

19대 국회는 지난해 7월2일 개원식을 열었다.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 33일 만의 ‘지각 개원’이다. 이는 6월5일까지 의장단을 선출하고 8일까지 상임위원장 구성을 마무리하도록 한 국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회는 아직도 지난해 예산결산 심사를 마치지 못했다. 이는 결산 심의·의결을 정기국회 개회 전(8월31일)으로 규정한 국회법 128조1항을 어긴 것이다.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투표하도록 정한 114조2항은 당론투표에 익숙한 여야 의원들에게는 아예 의미 없는 조항이다.

수시로 의원들 상임위 바꿔

최근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산업통상자원위원회로 소속 상임위를 변경했다. 같은 당 정우택 최고위원과 상임위를 맞바꾼 것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에서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인 임수경 의원과 상임위를 바꿨다. 이는 회기가 시작된 뒤 30일 이내에 상임위 이동(사·보임:辭補任)을 금지한 국회법 48조6항을 어긴 것이다. 국회법 40조1항은 상임위원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연평균 250건의 사·보임이 있었다. 사·보임을 금지한 국회법을 상시로 위반하고 있다는 얘기다.

의원들은 상임위 소위원회 회의 내용을 비공개로 의결하지 않는 한 공개하도록 한 국회법 조항(57조2항)도 지키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언행이 공개되는 걸 꺼려 소위원회 의결도 하지 않은 채 수시로 비공개로 회의를 진행한다. 국회 내 모든 회의는 회의록을 작성하도록 한 115조1항도 수시로 위반하기는 마찬가지다.

국회법은 국회의원의 품위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규제하고 있다. △회의장 내 질서문란행위 금지(145조1항) △타인 모욕 및 사생활에 대한 발언 금지(146조) △폭력행사 및 발언방해 금지(147조) △회의진행 방해물건 반입 금지(148조) △겸직내용의 신고(29조4항) △소관 상임위원 직무 관련 영리행위 금지(40조2항) △국회 출석 의무(32조1항) 등이다. 이들 법 조항은 수많은 언론 보도를 통해 보듯이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다.

국회의원들이 수시로 법을 위반하다 보니 국회 공무원들의 황당한 위법 사례가 터져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한 국회 도서관 직원은 국회 도서관 내 책을 몰래 팔아 수익을 챙기다가 걸렸고, 국회 소속의 한 입법조사관은 여자 화장실에서 ‘몰카’를 찍다 경찰에 입건됐다.

국회 관계자는 “공무원의 인사권은 사무총장, 지휘권은 각 상임위원장에게 있는데 모두 잠시 거쳐가는 정치인이다 보니 국회 공무원들은 별로 이들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법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국회의원들이 이처럼 법을 수시로 어기는 건 의원들의 위반시 처벌 규정이 따로 없어서다.

김기림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팀장은 “인사청문 시한도 인사청문회법에 규정돼 있으나 이를 어겼을 시 제재 장치는 따로 없다”며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법을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래 처벌조항을 규정하지 않은 헌법은 국회의원들의 낮은 준법정신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예산안 처리 시한이나 ‘국회의원의 청렴의무 조항(46조1항)’ ‘의원의 지위남용을 통한 권리나 이익취득 금지(46조3항)’ 등은 당연히 국회의원이 지켜야 할 의무 조항이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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