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ㆍ채동욱 靑과 충돌하며 '잡음'…진영 '항명파동' 설상가상
기초연금 비롯 靑-주무부처, 부처간 정책 갈등조정 실패도 여전
전문가 "靑주도 국정운영ㆍ소통부재가 원인"…책임장관제 논란소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항명 파동'을 야기한 채 30일 결국 낙마하면서 집권 첫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난맥상이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더 이상 진 장관이 국무위원으로서 국민을 위한 임무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사표를 수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진 장관은 정부의 기초연금 최종안이 국민연금과 연계돼 자신의 소신에 맞지 않았다는 점을 사퇴이유로 들었지만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정 총리의 사표 반려와 업무 복귀 명령에도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임면권자인 박 대통령의 '영(令)'이 서지 않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결국 이번 사태를 집권 7개월을 맞은 이 정부 국정운영의 틀을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인사가 끊임없는 논란을 낳으면서 박근혜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양건 전 감사원장과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를 둘러싼 잡음에 이어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진 장관마저 청와대와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이면서 현 인사시스템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진 장관의 경우 보건복지 분야의 전문가가 아닐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을 만든 친박(친박근혜)계의 주축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의 장관 발탁을 놓고 갸우뚱하는 기류가 없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대선공약을 집대성한 최측근 인사라는 점 때문에 그의 발탁을 문제삼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다.

민주당은 당장 "인사 참사가 '시즌 2'로 들어온 것 같다"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 운영에서 '인사가 만사' 임을 감안할 때 결국 이런 잦은 인사파동은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깊은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는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진 장관 사태는 인사 문제를 넘어 정부의 핵심정책의 성안과 관련, 청와대와 주무부처 장관간 조정 기능이 거의 부재한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낳고 있다.

이는 청와대 참모가 내각 위에 군림하는 듯한 관계설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애초 새 정부가 표방했던 '책임장관제'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나온다.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 이후 청와대 비서실의 '그립'이 더욱 강해지면서 정부와 청와대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많아졌다.

진 장관은 29일 사퇴 의사를 고수하면서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데 반대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뜻을 청와대에도 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밝히면서 청와대와의 갈등설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부처 간 칸막이 제거와 협업은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국정운영 4대 원칙의 하나로 거론할 정도로 줄곧 강조해온 것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번에 불거진 기초연금 문제뿐만 아니라 '부처 이기주의'가 표면화된 갈등은 여러 군데에서 외부로 노출된 것이 사실이다.

주택 취득세 인하를 둘러싼 국토교통부와 안전행정부 간의 이해충돌, 공항 입국장 면세점 설치를 놓고 찬성인 국토부와 반대인 기획재정부 간의 불협화음, '다문화 가정 정책'과 관련한 예산 중복지원 및 비효율 문제,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 관련 입법예고에 대한 국토부ㆍ산업부의 반발 등이 새 정부 출범 7개월간 쉴새 없이 터져 나왔다.

박 대통령과 정 총리가 수차례 나서서 이러한 갈등 노출을 질책하고 협업을 주문했지만 청와대와 부처, 부처와 부처 사이의 갈등 조정이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사 난맥상과 정책 조정 실패 등이 맞물리며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총체적 난국을 맞은 느낌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큰 원인으로 청와대의 국정 주도로 인한 책임장관제 부재, 청와대와 부처 간의 소통 실패 등을 꼽고 있다.

청와대가 큰 방향성을 잡고 최종 결정만 하는 역할에서 더 나아가 정책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좌우하는 바람에 부처가 자율적으로 정책을 만들어 실행할 입지가 좁아졌고, 청와대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연연하며 부처간 갈등이 노출되는 결과가 초래됐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이 책임장관제를 하겠다고 했는데도 청와대 참모에 의존해 국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며 "청와대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면서 '당신은 집행만 하고 책임만 지라'는 식이 된다면 진 장관 사태는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이러한 문제는 김기춘 비서실장 이후에 두드러진다는 점이 주목된다"며 "원래 소통 부재가 있었는데 요즘 더 심해졌고, 박 대통령에게 정보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진 장관의 말이 진실이라고 한다면 청와대 참모들이 장관, 즉 내각에 군림하는 것 아닌가 하는 뉘앙스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청와대 참모는 절대로 내각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며 "이런 문제가 노출됐다면 참모진과 내각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