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3% 성장을 못하면 우리 경제가 일본형 장기불황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일 겁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 살리기입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돈(세금) 낼 사람이 못내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복지를 늘립니까.”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

경제 전문가들은 출범 6개월된 박근혜 정부에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증세 없는 복지는 어렵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설득할 것을 주문했다. 전·월세 대란을 막기 위해선 과거 부동산 투기가 한창일 때 도입된 다주택자 규제를 풀 것을 제안했다. 한국경제신문이 22일 전직 경제장관, 경제연구소장, 경제학회장 등 경제 전문가 6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다.

[朴대통령 취임 6개월 ] "내년에도 3% 성장 못하면 장기불황 공포…성장우선 천명을"

○“성장 없이 일자리, 복지 없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성장을 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복지 재원 조달도 가능한데 지금은 성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실종된 상태”라며 “대통령이 나서 성장 우선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창조경제에 대해선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성장의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주저없이 “성장이 해답”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윤 전 장관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공무원 숫자를 늘리는 건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성장을 통해 일자리와 세수를 늘리고 이를 통해 복지 여력을 확충하는 데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구체적으로 “의료·교육·관광 등 서비스업 활성화를 통해 창조경제의 컬러(색깔)를 드러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올 상반기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경제민주화에 대해선 경제적 강자의 횡포를 막는 것은 필요하지만 기업의 지배구조를 뒤흔들거나, 투자 심리를 훼손해선 안된다는 견해가 많았다.

경제 성장을 위한 방안으로 수도권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좁은 땅덩어리에서 수도권 규제완화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어디든 국내 투자만 되면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것보다 낫다”고 강조했다. 윤 원장은 “대통령이 립서비스에 그치지 말고 기업이 투자하고 싶을 때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지금으로선 복지 확대 어렵다”

박 대통령 임기 5년간 135조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한 복지 확대 문제에 대해선 증세가 힘들다면 현실적으로 복지 공약을 축소하거나 공약 이행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윤 원장은 “최근 세제 개편안에 대한 국민 여론을 보면 세금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세금을 더 내기 싫다면 복지를 늘리기도 어렵다는 점을 정부가 국민들에게 솔직히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근로자의 40% 가까이가 현재 소득세 면세 혜택을 받고 있고, 부가가치세 인상은 다 무서워 입도 못벌리고, 법인세는 기업 투자 때문에 함부로 못 올린다”며 “이런 상황에서 무슨 ‘고부담, 고복지(세금을 더 내고 복지 혜택을 늘리는 것)’냐”고 반문했다.

김인철 한국경제학회장은 “국민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정책을 원한다. 재원 조달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경중을 가린 복지 정책에 박수를 보낼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다주택자, 투기꾼 몰아선 안돼”

‘대란’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전·월세 가격 급등을 풀기 위해선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집값이 떨어지는 데 누가 집을 사느냐. 아무도 집을 안 사려고 하니 공급이 부족해 전·월세 가격이 뛰는 것”이라며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풀어줘야 전·월세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 전 장관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은 과거 부동산 투기 때 쓴 극약처방인 만큼 집값이 안 오르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주현 원장은 “과거 부동산 거품 때 놀란 정부가 솥뚜껑을 보고 놀라는 격이다. 그래서 시장 상황이 바뀌었는 데도 부동산 정책을 못 바꾸고 있다”고 꼬집었다.

주용석/이심기/서정환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