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60년, 기적의 60년] 미러클 코리아…307일 걸리던 1억弗 수출, 지금은 3시간30분
“거리엔 팔다리를 잃은 거지들이 가득했다. 굶주린 여인들은 어두운 얼굴로 젖먹이를 안은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눈뜨곤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한국 현대사 연구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저서 ‘한국현대사’에 묘사한 6·25전쟁 직후 한국의 모습이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기아와 궁핍의 땅엔 최첨단 산업시설과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한국을 두고 세계는 ‘한강의 기적’ 혹은 ‘코리안 미러클(Korean miracle)’이라고 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제외하곤 20세기 역사를 논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지금은 과거 참전국을 지원하는 나라로 바뀐 것이다.

◆1인당 소득 300배 넘게 증가

1950년대 중반. 배를 곯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생기면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두는 게 버릇이었다. 누런 보리밥이든 희멀건 강냉이 죽이든 일단 그릇이 커야 했다. 하지만 1950년대 670㎖였던 밥그릇은 경제발전과 더불어 작아졌고 2000년대에는 290㎖까지 줄었다.

흥미로운 것은 밥그릇이 작아질수록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육류 등 고열량 식품의 섭취가 늘었으나 쌀 소비량은 오히려 줄어든 것.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GNI는 지난해 2만1632달러로 300배 넘게 뛰었다. 도시 근로자가구의 월평균 소득도 통계집계를 시작한 1963년에는 5990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502만원으로 50년 만에 1000배 가까이 늘었다.

삶의 질도 높아졌다. 1949년 1만8000여대에 불과했던 자동차 등록대수는 1916만대(올 6월 기준)로 폭증했다. 유선전화 가입자 수는 1949년 4만1000명에서 2012년 1826만명으로 늘었다. 유선전화보다 3배가량 많은 휴대폰 사용자까지 포함하면 7186만명에 달한다.

1억달러를 수출하기까지 1963년엔 307일이 걸렸지만 지금은 3시간30분이면 된다. 수출 규모가 2만배 가까이 늘면서다. 1955년 7대뿐이었던 자동차 연간 생산량은 지난해

456만대를 돌파했다. 금융시장도 천문학적인 속도로 발전했다. 4억원 규모였던 1956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1977년 처음 1조원을 돌파했고, 1993년 100조원, 지난해엔 512조원까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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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했던 코리안 미러클의 여정

60년 만에 국내총생산(GDP)이 900배 가까이 급증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정전 직후 미국은 한국의 공업화에 회의적이었다. 1961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미국을 방문해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내놓으면서 원조를 요청했을 때도 미국 국무부 관료들은 “이게 무슨 경제개발 계획인가. 쇼핑 리스트지…”라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일에서 차관을 들여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탄광을 개발하고, 철도를 놨다.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택하면서 중화학 공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단행해 경제 고속성장의 기틀을 만들었다.

선진국들의 원조 덕에 초기 경제의 기틀을 잡아 빠른 성장을 이룬 만큼 한국은 이제 후발국들에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바뀌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

정부는 무상원조 확대 과정에서 참전국에 대한 ‘보은 원조’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무상원조 집행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참전 16개국 가운데 선진국을 제외한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필리핀, 에티오피아, 콜롬비아에서 원조사업을 진행했다. 특히 필리핀 에티오피아 콜롬비아를 공적개발원조(ODA) 중점협력국으로 지정해 1991년부터 총 2억1470만달러 규모의 원조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국내적으로는 이념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만만찮다. 북한의 끝없는 도발에 대응하는 비용도 엄청나다. ‘북한발 안보 불안’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치를 떨어뜨리는 것)’는 한국 경제와 기업들에 위협요소다.

고은이/조수영/도병욱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