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鬼胎 막말' 여권 총공세에…강경했던 민주 한발 후퇴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귀태(鬼胎·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의 후손’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여권은 12일 파상공세를 폈다. 새누리당은 이날 모든 원내 일정 중단을 선언하고 민주당은 국정원 국정조사 물타기라고 반박하면서 정국은 얼어붙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오후 한발 물러섰다. 김한길 대표가 유감표명을 하고 홍 원내대변인이 사과와 함께 대변인직을 사퇴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13일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어서 정국 정상화 여부는 주말에 판가름날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 모두 ‘확전’에 대한 부담이 있는 만큼 극적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국정원 국조파행 빌미줬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강경했다. 김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본질을 가리기 위해 정부·여당과 국정원이 총동원돼 국정원 국정조사의 무력화를 시도해도 우리는 결코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은혜 은수미 박홍근 의원 등 초선 의원 18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종신 대통령을 꿈꿨던 유신시대가 떠오르고 전제군주의 모습이 연상된다”고 박 대통령을 겨냥했다.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는 새누리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대화록의 예비열람 일정을 취소한 데 대해 “국정 불안과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파문이 확산되자 홍 원내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사과 말씀과 함께 책임감을 느끼고 원내대변인직을 사임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는 회의를 열고 논의 끝에 홍 원내대변인의 사퇴 의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김 대표도 유감을 표명했다.

민주당이 한발 물러선 것은 ‘막말 논란’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국 파국이 장기화될 경우 결코 민주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돌파구를 찾아 나선 것이다. 한 관계자는 “쓸데없는 막말로 여당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국정원 국조 파행의 빌미를 줬다”며 “4대강 등 현안도 자칫 뒷전으로 밀려날 판”이라고 지적했다. 온건파 지도부가 친노무현계 등 강경파에 휘둘린다는 비판도 지도부를 움직이게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눈높이 맞는 사과 필요”

새누리당은 강경했다. 원내 일정 중단을 선언하고 민주당 지도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일부에서는 홍 원내대변인이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새누리당은 홍 원내대변인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열릴 예정이던 운영위 회의를 취소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할 여야 의원 10명은 운영위에서 회의를 한 뒤 성남 국가기록원으로 이동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의혹’과 관련된 대화록을 예비 열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회의가 취소됨에 따라 대화록 열람도 무산됐다. 홍준표 경남지사 고발을 논의할 예정이던 공공의료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도 취소됐다.

황우여 대표는 긴급최고위원회의를 소집했다. 황 대표는 “국가원수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및 모독이며, 국민에 대한 모독으로 정치인으로서 해선 안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최 원내대표는 “홍 의원이 전·현직 국가원수에 대해 모욕을 넘어 저주하는 내용의 얘기를 했다”며 “절대 묵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홍 원내대변인이 사퇴한 데 대해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진정성 있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게 당 지도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내일 당 지도부와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해 보겠다”고 했다. 김 대표의 유감 표명이 새누리당이 요구한 사과 수준을 충족할 수 있을지가 정국 정상화 여부의 관건이다.

이호기/이태훈/추가영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