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위원들 책상 위에 계류 법안들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2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위원들 책상 위에 계류 법안들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오제세 국회 보건복지위원장(민주당)이 지난해 11월 대표 발의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무상 보육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70%, 30% 분담하도록 명시한 게 주된 내용이다. 올해부터 무상보육 전면 실시로 지방 재정이 크게 악화되면서 국고 분담 비율을 늘려 지방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이 법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많은 정치권의 현실을 반영하듯 여야를 막론하고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복지위를 통과하고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문제는 이 법이 바로 전형적인 처분적 법률이라는 점이다. 처분적 법률이란 개별적 법률, 집행적 법률과 비슷한 의미로 행정부의 집행이나 사법부의 재판을 통하지 않고도 권리·의무가 곧바로 확정되는 법률을 말한다. 우리나라 헌법의 기본 원리인 삼권 분립에 위배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은 무상보육 비용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거나 보조하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인 분담 비율에 대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협의해 결정할 수 있도록 맡긴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30일 “정부와 지자체 간 비용 분담률은 입법이 아닌 행정의 영역”이라며 “당장 지방 재정이 어렵다고 분담률을 법률에다 명시해 놓으면 나중에 거꾸로 국가 재정이 어려워질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또 “국회 입법은 정부가 정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이 같은 점을 인정한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최근 들어 정부 예산을 확정적으로 표시한 법안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나중에 정부가 해당 법률에 따라 예산을 책정하지 않으면 위법이 되므로 정부의 고유 권한인 예산안 입안권을 크게 침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치권이 국회를 통과할 필요가 없는 법 시행령이나 규칙에 들어가도 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항까지 법안에 담다 보니 행정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법안 개정을 자주 하게 함으로써 입법 만능을 초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소득 양극화 등으로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이 같은 처분적 입법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재벌 등 특정 계층을 겨냥한 개별적, 처분적 법률이 쏟아지고 있다”며 “이 같은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표적 입법’으로 법을 지켜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법치를 허물고 있다”고 강조했다.

처분적 법률이 그 자체로서 위헌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헌법재판소는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낸 ‘BBK 특검법’ 위헌 소송에서 “우리 헌법은 처분적 법률의 정의를 따로 두고 있지 않음은 물론 이런 법률의 제정을 금하는 규정도 명시적으로 두고 있지 않다”며 “처분적 법률에 따른 차별적 규율이 합리적인 이유로 정당화되는 경우에는 위헌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입법 재량권을 어디로 볼 것인지에 대해 합의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헌재 판례 등을 참고해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 법제실과 전문위원 등의 심사로 이 같은 처분적 법률을 걸러내고는 있으나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보니 의원들이 입법을 강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했다.

조 교수는 “사실상 처분적 법률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한 상태”라며 “국회의 과잉 입법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시민사회가 나서서 견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산업부 이건호 차장(팀장)·이태명·정인설 기자, 정치부 김재후·이호기·이태훈 기
자, 경제부 김주완 기자, 지식사회부 양병훈 기자>


■ 처분적 법률

행정부의 집행 기능을 매개하지 않고 국민에게 직접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권리와 의무를 발생시키는 법률을 말한다.

처분이나 조치와 같은 구체적, 개별적인 사항을 법안에 담아 입법이 집행 기능, 행정 기능까지 침범한다는 지적이 있다. 법률은 일반적이고 평등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위헌 소지도 안고 있다.